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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력(Gregorian calendar)은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양력 달력이다. 그레고리력의 1년은 365 또는 366일이다.

동기: 율리우스력과 유대력[]

그레고리오력의 채택 동기는 역사적으로 로마 가톨릭 내의 사소한 의견 차이에 근거한다. 기원 후 4세기 초에 소아시아에 위치한 도시 에페소스의 주교인 폴리크라테스는 가톨릭교회의 축제일인 부활절의 날짜를 로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날짜와 달리 정하므로서 의견 충돌의 불씨를 당겼다. 폴리크라테스는 물론 새로운 부활절의 날짜를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에 대한 요한복음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였던 것이다. 예수가 부활한 날짜는 태음력인 유대력에 따르면 니산(Nissan: 봄이 시작되는 달)의 14일 혹은 15일로서 당시에 로마 가톨릭에서 쓰이던 태양력인 율리우스력과 동일한 날짜가 아니었던 것이다.

니케아 종교회의와 개정 (1582년 10월 4일)[]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소집된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이와 같은 사소한 종교 상의 의견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부활절을 모든 기독교인들이 같은 날에 기념하기로 하였고, 그 방안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게되는 춘분일을 율리우스력에 따라 3월 21일로 확정하였다. 회의에 참가한 주교들 또한 대부분 이와 같은 방법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율리우스력은 실질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햇수와 날의 계산에서 작은 편차가 있었다. 즉, 율리우스력의 한 해의 길이는 365일 6시간이며 이는 천문학적으로 계산한 1년의 길이보다 약 11분이 길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11.232분의 편차는 16세기에 이르러서 10일이 빠를 정도로 달력에 큰 오차가 생겼다.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1582년 10월 4일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였으며, 개정한 달력은 그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오력으로 부르게 되었다.

개정 내용: 윤년 계산방법[]

개정 내용은 첫째로 1582년 10월 4일 다음에 곧바로 1582년 10월 15일이 따르도록 하여 위에서 설명한 10일의 편차를 제거하였으며, 둘째로 율리우스력보다 편차가 적게 나는 윤력의 계산 방법을 도입하였다. 그레고리오력의 윤력 계산 방법에 따르면, 400년마다 3일의 윤일을 공제시키며, 이는 오직 해당 해가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을 경우에 한한다. 예컨대 2000년은 윤년이지만, 1700년, 1800년, 1900년은 윤년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레고리오력은 물론 천문학적 달력의 근사치에 불과하며, 3333년 마다 하루가 길어지는 편차를 갖고 있다.

자세한 설명[]

율리우스력은 1년을 365.25일로 했으며, 0.25일의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4년에 한 번씩 1일을 추가한 윤년이 있었다(곧 400년에 100번의 윤년이 있게 됨). 하지만 정확한 천문학적 1년(태양년)과는 약간의 오차가 있었기 때문에 그 오차를 더 줄인 그레고리력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레고리오력은 1년을 365.2425일로 보았으며, 율리우스력보다 0.0075일 줄어든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매 400년마다 3일씩을 빼도록 했다(정확하게는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134년마다 하루씩 짧아지기 때문에 402(=134x3)년마다 3일씩 빼야 정확한 계산이 된다. 하지만 이것도 쉬운 계산을 위해 402년을 400년으로 단순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3일은 400년마다 세 번의 윤년을 빼는 방법으로 해결했다(그러므로 그레고리력에서는 400년에 97번의 윤년이 있게 된다). 그 규칙은 다음과 같다. 율리우스력과 마찬가지로 4년마다 한 번씩 윤년이 있지만,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예: 100년, 200년, 300년)는 윤년에서 제외시키고, 다시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예: 1600년, 2000년)에는 다시 윤년이 되도록 했다. 이러한 규칙은 400년마다 반복이 된다.

나중에 개정한 나라들[]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가 그레고리력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위에서 짧게 살펴본 바와 같이 종교적 이유에서 동유럽 국가는 20세기 초엽까지 유대력 혹은 율리우스력을 고수하였다. 한 예로서 안톤 체호프독일의 바덴바일러에서 사망하였을 때, 그곳 경찰에 의해 기록된 사망 날자는 그레고리력에 따른 1904년 7월 15일이지만, 당시의 러시아에서 쓰이던 율리우스력으로는 7월 2일이며 이 사망일을 오늘날까지 체홉 연구학회에서는 고수하고 있다.

조선은 1895년 을미개혁 때인 양력 1896년 1월 1일(건양 원년)부터 그레고리력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참고 문헌[]

  • 《시간의 지도: 달력》, E.G. 리처즈, 이민아 옮김, 까치,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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