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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삼제주 4·3 항쟁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장인 강문석이 쓰던 가명인데 이승진이 그대로 이어받아 사용한 것이다.

김달삼은 친일파척결, 외지경찰철수, 자주독립 및 남북 통일정부 수립 등을 요구하며 5.10 총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제주도 남로당은 당중앙의 지령 없이 독단적으로 봉기를 일으켰으며, 이후 이어진 주한미군대한민국국군의 합동토벌작전으로 제주에서 심각한 인명피해를 입혔다.

1948년 4월 28일 김달삼과 연대장 김익렬 간의 평화협상이 열렸다.

남한 정권이 수립된 직후인 1948년 8월 21일부터 26일까지 황해도 해주에서 인민대표자대회가 열렸는데 김달삼은 여기에 참가하여 '제주 4·3투쟁에 관한 보고'를 하였다. 이 해주대회는 북한 정권 수립을 위한 예비 절차로서 남한에서는 1,002명의 대의원이 참가했고, 제주에서는 6명이 참가했다. 그는 여기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위원회 헌법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공통적인 것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유격대를 이끌고 태백산 지구에서 유격전을 벌이다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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