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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1944년 음력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독립 운동가 김근수, 전월선의 장남으로 중국 충칭에서 태어났다. 14대, 16대,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국회윤리특위장,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 노무현대통령과 함께 식당 ‘하로동선’ 대표를 역임하였다.

생애[]

일제 말기인 1944년 3월 8일(음력)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중경 사천성에서 독립군 부모인 김근수, 전월선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의 부모는 백범 김구의 중매로 연을 맺었다. 해방이 되자 이들 가족은 배를 타고 양자강을 따라 중국을 떠나 부산을 거쳐 고향 대전에 정착한다. 이후 대전 원동초, 대전 중고등학교, 서울대 정치학과, 중국 국립 정치대 대학원을 수학하였다.

졸업후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의 공채직원으로 들어가 정당생활을 시작했다. 공화당 민정당을 거쳐 90년 3당 합당으로 생긴 민자당의 합류를 3당 야합이라 비판하며 탈당한다. 노무현, 제정구, 유인태 등과 꼬마민주당을 창당했으며, 처음으로 14대 총선에 출마하여 국회에 입성하였다.

92년 14대국회가 시작되면서 제정구 등 초선의원 12명과 함께 「깨끗한 정치실천」을 하여 모든 정치인과 공직자의 재산공개, 정치자금 공개를 주도하였다.

96년 15대 총선에서 대전 대덕에서 낙선한 후 노무현 등과 함께 서울 역삼동에 ‘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처럼 언젠가 때를 만나면 소중하게 쓰일 날이 올 것’이라는 뜻의 ‘하로동선(夏爐冬扇)’이란 상호로 식당을 개업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꼬마민주당을 흡수한 한나라당으로 출마하여 충청권에서 유일한 한나라당 당선자가 됨. 이후 2002년 개혁당에 현역의원으로 합류 공동대표가 되면서 노무현정권 창출에 공을 세웠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3선의원이 되었다. 현재 일관된 개혁 민족노선을 주장하며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의지를 밝힌바 있다.

약력[]

  • 대학 시절 한일회담을 굴욕적이라 비판하며 투쟁하다 투옥
  • 정치부기자들이 뽑은 ‘깨끗한 정치인’ 선정(95)
  • 녹색정치인상 수상(환경운동연합, 00)
  • 국회의원 성적표 273명중 1위(경실련, 01)
  • 민족사 정립 공로상 수상(민족문제연구소, 06)
  • 국민학교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꿈(교육법개정, 95)
  • 독립기념관 이사(92~96)
  • 유네스코 한국위원(95~96)
  • 식당 ‘하로동선’ 대표(97~99)
  • 통추 대변인(96~99)
  • 민화협 공동의장(03)
  • 북관대첩비 환수위원회 위원장(05~06)
  • 조선왕조실록 환수협상단장(06)
  • 해외입양인연대 이사장(현)
  • 단재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현)
  • 민족평화축전 조직위원회 회장(현)
  • 개혁당 대표(03~04)
  • 국회 윤리특별위원장(04~06)
  •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현)

비판[]

독립군 출신인 가족 신분을 토대로 출신성분적 한계를 지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았다. 처음 정치를 시작한 공화당 이력을 시비로 정치색채가 의심받은 적이 있다. 현 열린우리당의 분당 배경이 된 참정연을 추진한 당사자로 꾸준히 열린우리당 분열의 책임자로 비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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