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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공산주의 남조선로동당(南朝鮮勞動黨), 줄여서 남로당1946년 11월 23일 서울에서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의 합당으로 결성된 공산주의정당이다. 위원장은 허헌이 맡았다. 1946년 12월 2일 허헌은 기자회견에서 사로당(사회노동당)을 겨냥하여 기회주의적이고 영웅주의적인 태도로 인민의 갈 바를 혼란시키는 것은 절대로 배격하는 바라고 비난하고, 진실로 독립과 인민의 이익을 위하여 싸우려는 진정한 동지는 남로당에 들어와 같이 싸울 수 있다고 밝혔다.

1950년 4월 북조선로동당과 통합, 하나의 조선로동당이 되었다. 이후 박헌영을 리더로 월북한 남로당파는 처음에 북조선에서 상당한 세력으로 자리잡았으나, 1955년에 즈음하여 김일성의 숙청 대상이 되었다.

남조선로동당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고, 남로당파가 숙청으로 사라진 뒤에도 '남로당' 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에서 활동중인 조선로동당의 지부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자리잡았다.

2·7파업과 남로당[]

1948년에 들어와 강경투쟁으로 전환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투쟁이 바로 2·7파업이다. 1948년 2월 7일 아침,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노동자들은 통신과 운송설비의 가동을 중지시키면서 총파업에 들어갔다.

제주 4·3 항쟁과 남로당[]

제주 4·3 항쟁1948년 남로당원 김달삼이 신탁통치 반대, 통일정부 결성, 친일파 척결 등을 내세우며 제주 내의 좌익세력을 결집. 5.10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하고 봉기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 제주 도당이 깊게 연관되어 있을 것은 분명하나, 남로당 당중앙과의 연계는 아직 미상이다. 이 사건에 대한 진압을 명받은 14연대는 여순 14연대 반란사건을 일으켰다.

여순 14연대 반란사건과 남로당[]

여순 14연대 반란사건1948년 당시 대한민국국군 14연대의 인사계 상사였던 지창수가 14연대를 이끌고 봉기하여 여수시순천시 일대를 장악했다가,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으로 들어간 사건을 가리킨다. 이 사건의 주동자 지창수가 남로당원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이 사건이 남로당의 지령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수는 수도 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지창수가 부대원들에게 조선인민군이 남하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반란이 일어난 후에 남로당의 승인이 떨어졌다는 등의 상황증거는 지창수가 우발적으로 일으킨 반란을 남로당 당중앙이 후에 어쩔 수 없이 승인했음을 보여준다.

이후 남로당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는데, 이 탄압을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인 박정희는 후에 대한민국대통령이 되었다. 박정희는 당시 남로당 작전총책으로 있으면서 체포된 뒤 남로당의 조직구도 및 위계질서를 전부 경찰에 폭로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4연대 반란사건 이후 남로당의 지상활동은 거의 소멸했다. 반란사건과 그 이후 이어진 한국전쟁을 겪은 제1공화국이승만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제정, 모든 공산주의세력을 공권력을 이용해 탄압하였다. fa:حزب کارگران کره جنوب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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