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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ambig 이 문서는 1949년 이후의 중화민국에 관한 것입니다. 1949년 이전에 중국 본토를 다스렸던 중화민국에 대한 내용은 중화민국의 역사 문서에 있습니다. 중화민국이 다스리는 섬에 관한 내용은 타이완 섬 문서에 있습니다.

틀:중화민국 표 중화민국(中華民國)은 동아시아에 있는 나라이다. 1955년 이후 타이완 섬 (대만)과 진마 지구(金馬 地區)만을 통치하고 있으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중국 본토(중화인민공화국), 일본, 필리핀과 접하고 있다.

1912년 중국 (中國) 역사상 최초의 공화제 국가로 성립하여, 1928년 이후로는 중국의 거의 전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당의 중화민국 정부는 제2차 세계 대전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의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1949년 중국 대륙의 영토를 상실하고 타이완 섬 (대만)으로 후퇴, 철수하였다.

타이완 섬으로 후퇴한 이후로도 중화민국(대만)은 "중국의 정통 정부"를 자칭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중화민국(대만)은 세계적으로 중국의 정통 정부로 승인되지 않는 미승인 국가 상황에 빠져 있어서 대외적으로 정식 국명이 통용될 기회가 한정되어 있다. (중화민국의 정치을 참고.)

현재 이 나라를 승인하고 있는 나라는 겨우 23개국에 불과하고, 국제 사회에서는 "타이완" (臺灣)이라고 하는 ‘사실상 독립된 국가’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으며, 대만(臺灣) 또는 자유중국(自由中國)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타이완 지역을 중국의 23개의 성(省) 중 하나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중화민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제 무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증대되면서 대륙 수복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중화민국(대만)의 정치 무대는 대륙 수복을 추구하는 세력과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양분된 상태이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타이완(대만)이 독립을 선언할 경우 무력 침공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역사[]

중국의 역사, 중화민국의 역사, 타이완의 역사 항목을 참조하십시오.

중화민국의 역사는 베이징 정부기, 중국 국민정부기, 중화민국 재타이완기로 나뉜다.

베이징 정부기[]

  • 1912년: 중화민국 임시정부 난징에서 성립. 위안스카이 (원세개)가 임시총통으로 취임. 정부를 베이징에 이전. (베이징 정부)
  • 1915년: 일본21개조 요구를 들이대었다.
  • 1916년: 위안스카이, 중화제국 황제 즉위를 선언하지만, 내외의 반대로 단념. 직후에 위안스카이가 사망한 때문에, 각지의 군벌에 의한 전면적인 내란 상태가 된다.
  • 1919년: 삼일운동의 영향을 받아, 5·4 운동 발생.
  • 1921년: 쑨원 (손문)이 광저우에서 혁명정부를 수립.
  • 1926년: 장제스 (장개석)가 북벌을 개시.

중국 국민정부기[]

  • 1928년: 북벌 완료, 베이징 정부가 소멸됨. 장제스가 중국국민당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국민 정부를 난징에서 수립.
  •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난징에서 일본군중국인 대학살을 행한다. 국민정부는 충칭으로 후퇴.
  •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난징에서 중국 내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 총사령관에게서 항복문서를 받다. 유엔에 가입하여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된다.
  • 1946년: 중국 내전 격화. 국민정부가 난징으로 귀환하여 중화민국 헌법을 공포.
  • 1947년: 몽골의 독립을 승인. 타이완에서 2.28 사태 발발.
  • 1949년: 중공군이 수도 난징을 점령. 정부가 반 붕괴하여 타이완 섬으로 철수함. 통치 지역 내에서 계엄령을 실시.
파일:Chiang Kai-shek.jpg

장제스

중화민국 재타이완기[]

  • 1950년: 장제스총통으로 취임.
  • 1958년: 중공군이 진먼 섬을 포격. (진먼 섬 포격 사건)
  • 1971년: 유엔의 중국 대표권 상실. 유엔으로부터 강제 탈퇴.
  • 1975년: 장제스 사망.
  • 1980년: 장징궈(蔣經國, 장경국)가 무력에 의한 중국 재통일 정책을 변경.
  • 1987년: 타이완 지역에서 계엄령을 해제. 그 후 진마 지구에서도 차례로 해제.
  • 1988년: 리덩후이(李登輝, 이등휘)가 최초의 본성인(本省人) 출신으로 총통에 계임.
  • 1991년: 중화민국 헌법을 개정하여 주권재민의 원칙을 확립.
  • 1992년: 8월 24일 대한민국(남한)과 국교 단절.
  • 1993년: 대한민국(남한)과의 민간 관계 수립. 1993년 7월, 영사 업무, 경제, 홍보, 문화, 학술분야의 협력 관계 회복.
  • 1996년: 국민에 의한 첫 총통 선거 실시. 리덩후이(李登輝)가 당선.
  •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 진수편) 민주진보당 후보, 총통에 당선, 취임. 국민당의 반세기 집권을 종식시키고 평화적인 여야 정권 교체를 실현.
  • 2004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에 재선
  • 2008년: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마영구)가 제12대 중화민국 총통에 취임.

정치[]

국명[]

파일:Flag of Chinese Taipei for Olympic games.svg

차이니즈 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기

중국어 정식 명칭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며, 자국 내에서는 중화민국을 중화(中華)나 중국(中國)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또 공식 영어 표기는 Republic of China로, 약칭은 ROC이다. 다만 이 명칭은 중화민국이 1912년의 건국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통 정부'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로 인해 1971년유엔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정통 정부로서 승인된 이후로는 국제 사회에서 중화민국을 정식 명칭으로 부르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현재는 중화민국의 실질 통치 지역 중에서 중심 지역인 타이완(대만, Taiwan)이라 부르는 일이 많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타이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므로, 중화민국(대만)은 이 두 명칭을 대신하여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 中華臺北 또는 中華台北)라고 하는 명칭을 올림픽(1980년 대회 이후. 중화민국이 1980년 동, 하계 올림픽에 불참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1984년 대회 이후) 등의 스포츠 대회나 각종 국제 기구에서 사용하고 있다. 덧붙여, 세계 무역 기구(WTO)에서의 중화민국의 가맹 명칭은 공식적으로는 타이완·펑후·진먼·마쭈 개별관세영역(臺灣·澎湖·金門·馬祖 個別關稅領域; 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 台澎金馬個別關稅領域이며,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를 그것의 약칭(略稱)으로 사용하고 있다.

2008년 6월 4일 어우훙롄(毆鴻煉) 중화민국(대만) 외교부장은 국제 외교활동에서 타이완(Taiwan)이라는 명칭 대신에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中華臺北)'라는 명칭을 사용할 방침인 것으로 밝혔다.[1] 이는 중화민국(대만) 독립을 추구해 온 천수이볜 정부와는 다르게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통합을 지향하는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취임전에 주장한 것과도 일치되는 내용이다.

행정 구역[]

1949년 이후로 중화민국(대만) 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크게 타이완 지구(臺灣地區)와 대륙 지구(大陸地區)로 구분하고 있다. 타이완 지구에는 중화민국(대만) 정부의 실효 통치 지역인 타이완(臺灣) 섬과 펑후(澎湖), 마쭈(馬祖), 진먼(金門) 등의 섬들이 포함된다. 대륙 지구에는 중화민국(대만) 정부의 실효 통치 지역이 아니지만 중화민국(대만)의 영토로 간주되는 중국 대륙, 몽골, 투바 공화국 등이 포함된다.

중화민국(대만)은 국내를 성(省)과 직할시(直轄市)로 구분하여 각각 지방 정부를 두고 있다. 다만 1949년 이후 중앙정부의 통치 구역과 타이완 성 정부의 통치 구역이 거의 겹치게 되었기 때문에 성 정부의 기능은 사실상 폐지되었다. 현재도 성 정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중앙 정부가 직접 현(縣)을 관할한다.

    • 푸젠 성 (福建省, 복건성) ※1996년 1월 15일에 성정부 기능을 정지
    • 타이완 성 (臺灣省, 대만성) ※1998년 12월 20일에 성정부 기능을 정지
  • 2개 직할시(直轄市)
    • 타이베이 시 (臺北市)
    • 가오슝 시 (高雄市)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나라는 중화민국(타이완:臺灣)과 외교 관계를 비롯한 어떠한 공식적인 관계도 수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적인 외교 관계에 국한된 것이며, 실질적으로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나라는 거의 없다. 특히 미국일본중화인민공화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지금도 중화민국과의 교류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중화민국 (대만)은 아프리카 4개국, 유럽 1개국, 오세아니아 6개국, 아메리카 12개국, 아시아 0개국의 총 23개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나라 이름 우측상단의 별표는 대만에 대사관이 설립된 국가를 의미한다.)

아프리카 (4개국)

  • 틀:BFA* (1994)
  • 틀:GMB* (1995)
  • 틀:STP* (1997)
  • 틀:SWZ* (1968)


유럽 (1개국)

  • 틀:VAT * (1942)


오세아니아 (6개국)

  • 틀:KIR (2003)
  • 틀:MHL* (1998)
  • 틀:NRU (1980, 2005)
  • 틀:PLW* (1999)
  • 틀:SLB* (1983)
  • 틀:TUV (1979)

아메리카 (12개국)
  • 틀:BLZ* (1989)
  • 틀:DOM* (1957)
  • 틀:SLV* (1961)
  • 틀:GTM* (1960)
  • 틀:HTI *(1956)
  • 틀:HND* (1965)
  • 틀:NIC* (1990)
  • 틀:PAN* (1954)
  • 틀:PRY* (1957)
  • 틀:KNA* (1983)
  • 틀:LCA (1984, 2007)
  • 틀:VCT (1981)

해외언론을 통해 바티칸 시국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수교문제가 종종 보도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직후인 지난 2005년 4월 5일 칭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하고 종교를 내세워 중국의 내부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바티칸과 수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대만과의 관계단절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였다.

바티칸 시국중화민국(대만)과 단교를 하면, 현재 중화민국(대만)과 수교하고있는 나머지 14개의 가톨릭 국가들(상투메 프린시페, 스와질란드, 키리바시, 팔라우, 벨리즈, 도미니카 공화국,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아이티, 온두라스, 니카라과, 파나마, 파라과이, 세인트루시아)도 바티칸 시국을 따라 연쇄적으로 단교할 것으로 예상되어 중화민국(대만)의 국제적 고립상태는 더욱 깊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군사[]

파일:ROCN Yuenfeng.jpg

중화민국 해군

중화민국 헌법 제 20조의 규정에 의해 중화민국(대만)에서는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으므로, 만 19세 이상의 남자에게는 16개월간의 병역 의무가 주어진다(현재 복무기간은 1년). 국군인 중화민국군은 정규군 약 30만 명, 예비역으로 약 165만 명의 병력을 포함하며, 정규군은 육군 20만 명, 해군 4만 5000명, 공군 4만 500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 종교적 또는 개인의 비폭력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를 거쳐서 허용하고 있는데, 현재 중화민국(대만) 정부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양로원등의 사회 복지 시설에서의 사회 봉사로 군복무를 대체하도록 하되, 합숙 생활을 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를 타이완으로 이전한 이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의 군사적 대립으로 인하여 중화민국(대만)군은 최신예 개인 화기, 군용기, 군용선 등을 운용하고 있으며, 2007년도의 국방 예산은 GDP의 약 2.5%에 상당하는 89억 미국 달러에 이른다. 다만 최근에는 국방 관계 예산의 삭감이 이루어져서 정부는 특별 예산을 짜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중화민국(대만)군의 가장 중요한 군사기지는 중국 연안의 진마 지구 진먼 섬이다.

미국과의 단교 이후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이 폐기되고 타이완 주둔 미군이 철수했지만, 미국은 첨단 무기를 판매하고 군사훈련에 미군을 참관시키는 등 군사협력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지리[]

파일:Taiwan NASA Terra MODIS 23791.jpg

인공위성으로 찍은 타이완 섬

현재 중화민국(대만)의 실효 통치 지역은 타이완 지구(臺灣地區), 진마 지구(金馬地區), 둥사(東沙) 군도, 난사(南沙) 군도타이핑(太平) 섬이다. 동쪽으로는 일본, 북쪽과 서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남쪽으로는 필리핀과 접한다. 진마 지구(金馬地區)의 섬들은 중국 대륙 해안에 위치한다. 둥사 군도와 난사 군도의 타이핑 섬은 남중국해에 위치하며, 모두 무인도이다.

타이완 섬의 대부분은 산지이며, 서해안의 평지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가장 높은 산은 타이완 섬 중앙부에 위치한 위산(玉山)으로, 총 높이는 3,952 m이다.

중화민국(대만)은 1912년에 멸망한 청(淸)나라의 공식 영역을 자국의 국토로 규정하고 있으며, 총 면적은 11,418,174 km²이다. 그에 반해,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영토의 면적은 9,596,960㎢ 이다. 중화민국(대만)은 공식적으로는 국토(중국대륙)전역의 통치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외국과 체결한 모든 국경획정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화민국(대만)의 양대 정치세력인 국민당과 민진당이 각각 평화통일과 타이완의 독립국가화를 주장하고 있어서 큰 의미는 없다. 중화민국(대만)정부는 1991년 5월 1일 헌법을 개정해 정부 실효 통치 국토를 "자유 지구"라고 이름 붙이고, 헌법의 적용 국토를 "자유 지구"로 한정하고 있다. 그 중 행정구역상 복건성에 속하는 진먼도와 마쭈도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육지와 매우 가까이 붙어있어 여전히 군사적 긴장감이 높고, 고도로 요새화된 지역이다.

경제[]

파일:Forbys Taipei 101.jpg

타이베이 101

현재 중화민국(대만)의 통화 단위는 신 타이완 달러이며 (TWD, New Taiwan dollar), 통화의 발행은 중화민국 중앙은행(中華民國中央銀行)이 맡고 있다.

개략사[]

타이완 성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온난한 기후의 혜택을 받아서 농업에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중국 대륙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토지로 인해 이주해 왔다. 청조 시기와 일제 시대에 걸쳐서, 타이완(대만)은 그 높은 농업 생산성을 기반으로 하여 경제적 지위를 서서히 계속 확립했다.

1945년 중화민국으로 반환된 이후, 타이완 지구는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이행(移行)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1960년 이후의 급속한 공업화로 인해 신흥공업경제지역(NIES)의 일원이 되었다. 중국 대륙으로부터 타이완 섬으로 이전한 중화민국(대만) 정부는 정치적 안정을 도모함과 동시에, 강력하게 경제 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수출 지향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공업화 정책이 추진되어, 1973년에는 "십대건설(十大建設)"이라는 중공업의 계획적 개발이 실시되었다. 특히 인프라스트럭쳐의 정비, 철강, 조선(造船), 석유화학 산업의 육성이 중요 과제로 실시되어, 결과적으로 오늘날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국내의 노동자 임금이 상승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공장을 중국 대륙동남 아시아 등 저렴한 노동력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전하였으며 동시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로 유입되었다.

2002년 1월에 중화민국(대만)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여, 세계의 자유 무역 체제와 일체화되었다. 그 결과 도상국 및 도상 지역 특례를 이용할 수 없게 되어, 무역 관련 제도의 개선, 관세의 인하, 서비스, 무역의 자유화 등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2006년의 국내총생산(GDP)는 약 3,557억 미국 달러, GDP 성장률은 4.4%였다. 2006년 타이완(대만)의 1인당 구매력평가(PPP) 환산 국내총생산(GDP)은 30,687 미국 달러에 달한다. 이 수치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비슷하며, 아시아에서는 홍콩,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싱가포르, 일본, 이스라엘에 이어 7번째로 높다. 반면에 1인당 명목 GDP는 아시아에서 11번째로 높은 16,768 미국 달러(2007년) 정도에 불과하다.

제1차 산업[]

농업타이완 섬 서해안의 비옥한 평야 지역에서 주로 발달했다. 전체 토지의 24%가 곡물 재배에 적합하다. 사탕수수의 수확량이 많으며, 그 밖에 옥수수, 고구마, 아스파라거스, 버섯류, 대두, 땅콩, (茶), 바나나, 파인애플, 감귤류(柑橘類) 등 많은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최근 일본 등의 국가로의 농산물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돼지, 물소(이전에는 농경용), (羊), 산양, , 오리 등이 상업용으로 사육되고 있다.

국토의 약 60%가 삼림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목재는 그리 풍부하지 않다. 주로 오크(Oak), 개잎갈나무(Deodar Cedar), 대나무(Bamboo), 코늄(Conium), (籐, Rattan) 등이 산출(産出)되지만, 수요의 대부분은 수입재(材)에 의존하고 있다.

한편, 어업근해어업원양어업이 전체 어획고의 80%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연안어업양식업이다. 고등어다랑어의 어획량이 많다.

제2차 산업[]

지룽(基隆) 부근의 탄광에서 석탄이 산출(産出)되고 있다. 대리석, 유황, 원유(原油), 천연가스, 암염 등도 소량이지만 산출된다.

주요 공업 생산품은 시멘트, 석유, 라디오, 텔레비전, VTR, 전자 계산기(전산기), 컴퓨터 시스템 기기 등이다. 특히 중화민국(대만)에서 제조되는 전자 제품이나 전기 부품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화학공업, 석유화학공업, 섬유 산업, 플라스틱 제조업, 식품공업, 조선업(造船業) 등도 번성하고 있다.

2002년 추계(推計)의 연간 발전량은 1585억 3700만 kWh로, 그 약 4분의 1을 원자력발전소가 조달하고 있다.

제3차 산업[]

국민당 정부의 경공업 위주 경제 정책에 따라 경공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나, 중공업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중화민국(대만)은 세계 유수의 컴퓨터 부품 생산 기지로 세계 시장에서 유통되는 메인보드의 대다수가 생산된다. 그 외에 반도체액정 디스플레이(LCD) 등의 세계 시장 점유율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자체 상표가 아닌 주문자의 상표를 부착하는 주문자 생산(OEM)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을 갖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금융업이 활발하여 많은 외국 은행이 지점을 설치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생긴 주식의 자유화와 상승을 배경으로 주식시장도 활발해졌다. 그러나 2001년 이후의 불황으로 주가는 침체하고 있다.

타이완 지구의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2003년수출은 1,506억 12만 미국 달러, 수입은 1,272억 4,257만 미국 달러였다. 주요 수출품은 전기전자 제품, 섬유 제품, 플라스틱 제품, 장난감류, 가공 식품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원유, 목재, 철강, 기계류, 전기 및 전자 부품, 식료품이다. 주요 무역 대상국 및 지역은 미국, 일본, 독일, 홍콩, 대한민국(남한), 싱가포르 등이다.

교통 및 통신[]

파일:Taiwan-HighSpeedRail-700T-testrun-2006-0624.jpg

타이완 고속철도(2006년 6월 24일 찍음)

육상 운송 수단으로는 도로망이 특히 발달하였다. 타이완 섬 동해안의 쑤화공로(蘇花公路), 서해안의 중산고속공로(中山高速公路), 섬을 횡단하는 동서횡관공로(東西橫貫公路)나 남부횡관공로(南部橫貫公路) 등 간선도로가 잘 정비되어, 총연장 거리(距離)는 약 2만km에 이른다. 철도로는 지룽(基隆)을 기점으로 하는 동부간선(東部幹線)이나 타이베이(臺北)를 기점으로 하는 서부간선(西部幹線) 등이 타이완 섬의 해안선을 일주한다. 전체 길이는 약 4800km로, 주로 물자 수송에 이용되고 있다. 2007년 타이완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또 다른 변화가 기대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공사 시작 후의 대책 없는 궤간 변경 등의 작업, 해외 수주 경험이 전혀 없는 신칸센을 모티브로 한 것 등은 큰 논란 거리가 되었다.) 버스 노선 또한 발달하였다.

주요 항구은 지롱 시(基隆市), 화롄 시(花蓮市, 화롄 현), 가오슝 시(高雄市), 타이중 시(臺中市) 등이 있으며, 특히 가오슝은 국제 무역항으로서 타이완 지구 최대 규모의 항구인 동시에 동부 아시아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 중 하나이다. 국제 공항은 타이베이 시 근교의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臺灣桃園國際機場)과 가오슝 시의 가오슝 국제공항(高雄國際機場)이 있다. 타이완 지구 최대의 항공사중화항공(中華航空)은 국내선과 국제선에 취항하고 있다. 종래는 국내선 뿐이었던 에바항공(Eva Airways, 長榮航空)도 최근에는 국제선에 취항하고 있다.

휴대전화의 보급율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또 일간지는 약 30지(紙)가 있으며, 주요 신문으로는 타이베이 시(臺北市)에서 발행되고 있는 "중국시보"(中國時報), "연합보"(聯合報), "자유시보"(自由時報), 가오슝 시(高雄市)에서 발행되고 있는 "타이완신문보"(臺灣新聞報), 타이중 시(臺中市)에서 발행되고 있는 "타이완일보"(臺灣日報) 등이 있다.

타이완 지구의 주민[]

인구 구성과 주요 도시[]

인구는 2,292만 4,384명(2007년 8월 추계), 인구밀도는 1km²당 636명(2005년 기준)이다. 인구증가율은 0.34%(2007년). 서해안의 평야부에 인구가 집중하여 인구밀도는 지극히 높다. 경제발전에 의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유입으로 인하여, 도시 인구는 70%를 넘는다. 최대의 도시는 타이베이 시(臺北市)로, 264만 6474명(2000년 추계)이 거주한다. 제2의 도시로는 가오슝 시(高雄市)에 149만 560명이 거주하며, 타이완 최대의 공업 도시인 동시에 타이완 제일의 항만이 있다. 그 밖의 주요 도시로는 타이완 중부의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인 타이중 시(臺中市, 인구 96만 5790명), 타이완 남부의 경제, 문화 중심지인 타이난 시(臺南市, 73만 4650명)가 있다.

주민 구성[]

중화민국(대만) 주민은 크게 4개의 집단으로 구성된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계 원주민(고산족; 高山族, 약 1.7%),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주로 중국(中國) 푸젠 성(福建省) 및 광둥 성(廣東省)으로부터 이주한 한족계 본성인(漢族系本省人, 약 85.3%),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중국 각지로부터 이주한 외성인(外省人, 약 13%)이다. 한족계 본성인은 복노인(福佬人, 약 73.3%)과 객가인(客家人, 약12%) 등으로 더욱 세분화된다. 1945년 타이완 섬이 중화민국에 반환된 이후 초기에는 본성인과 외성인의 호흡이 맞지 않아서 2.28 사태 등의 불상사도 일어났다.

중화민국(대만)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주로 서양인과 미국인이다. 그밖에 1만 명의 일본인, 약간의 말레이인(필리핀 출신 주민 등), 베트남인, 몽골인, 티베트인 등이 있다.

주민의 언어[]

중화민국(대만)의 공용어는 베이징(北京) 방언인 표준 중국어(標準 中國語; 國語)이다. 일상에서는 그 외에 민남어(閩南語; 대만어)나 객가어(客家語), 중국 각지의 방언도 쓰인다. 또 고산족은 각각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화민국(대만)의 정치 민주화를 반영하여 민남어매스컴 등에서 사용될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외국어로는 일본어영어가 가장 많이 쓰인다.

타이완 지구의 문화[]

종교[]

종교로는 불교(佛敎), 도교(道敎), 유교(儒敎)의 3대 종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등이 존재한다. 통계 상 인구의 반 정도가 불교를 신앙하고 있고, 메노나이트, 장로교, 성공회,로마 가톨릭 등의 기독교는 7%, 이슬람교도는 1% 미만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타이완(대만)에서는 불교, 도교, 유교의 구분이 극히 애매하고, 서로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타이완(대만) 사람들의 종교 생활은 불교, 유교, 도교가 혼합된 것으로, 묘(廟)에서는 이러한 종교의 신들이 합사되고 있다. 특정의 신을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우에 따라 참배하는 신들을 바꾸고 있다. 따라서 타이완(대만) 사람들은 종파를 넘어 깊게 종교와 접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육[]

타이완의 교육제도는 1946년 제정된 중화민국 헌법(中華民國憲法)이 정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일본식 교육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의무 교육은 초등학교(국민소학; 國民小學)와 중학교(국민중학; 國民中學)의 9년간으로, 공립학교는 무료이다. 국민중학 졸업자의 대부분이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급중학(高級中學) 혹은 고급직업학교(高級職業學校)에 진학하고 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열이 높다.

타이완에는 약 150개의 대학교와 전과학교(專科學校) 등의 고등교육 기관이 있다. 주요 대학교로는 타이베이 시(臺北市)에 있는 국립 타이완 대학(國立臺灣大學, 1928년 창립),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1927년), 국립 사범대학(國立師範大學, 1946년), 타이난 시의 국립 성공대학(成功大學, 1931년), 타이중 시의 국립 중흥대학(中興大學, 1919년), 타오위안 현(桃園縣)의 국립 중앙대학(中央大學, 1968년), 쟈이 시(嘉義市)의 국립 가의대학(嘉義大學, 2000년), 가우슝 시(高雄市)의 국립 고웅대학(高雄大學, 2000년) 등이 있다. 국민당 정부가 중국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이전하면서 함께 넘어온 대학으로는 국립청화대학(國立清華大學), 국립 중산 대학(國立中山大學), 둥우 대학(東吳大學),푸런 대학(輔仁大學) 등이 있다.

문화[]

타이완 주민의 대부분이 한족이므로 그 문화 기반은 한문화이다. 중국 대륙의 전통 사회와 마찬가지로 가족은 사회 조직의 중요한 사회 단위가 되고 있다. 따라서 선조 숭배는 현재도 중요한 가족 행사의 하나이다. 또 구정 및 이십사절기에 따르는 청명절(淸明節)이나 중추절(中秋節)등의 전통적인 연중 행사는 매년 성대하게 행해지고 있다. 타이완의 일제 시대는 한국보다 15년이 더 긴 51년(1895년-1945년)이나, 타이완 주민들은 일본은 오히려 숱한 외부 지배 세력 중 하나였을 뿐이며, 비교적 정치를 잘 했다고 인식한다.

타이완에는 세계적인 도서관이나 미술관이 많다. 저명한 도서관으로는 타이베이 시(臺北市)에 있는 국립 중앙도서관(中央圖書館)이 있으며, 방대한 양의 장서를 보유할 뿐만 아니라 분관도 존재하고 있다. 또 각 주요 도시에 공립 도서관이 있다. 타이베이 시에 있는 국립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에는 중국 베이징(北京)의 자금성(紫禁城)으로부터 옮겨져 온 중국 역대 왕조의 뛰어난 문화유산이 다수 수집되어 있다. 또 국립 역사박물관(歷史博物館), 타이완성립박물관(臺灣省立博物館)에는 중국의 민속(民俗) 문물이나 현대 예술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대중 문화[]

타이완은 중화권에 속한 지역으로, 타이완의 대중 문화는 중화권과 맥을 같이 한다. 타이완 출신의 연예인들은 중국 대륙과 세계 각지의 화교 사회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외국 문화 중에서는 일본의 대중 문화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대중 문화는 타이완의 대중 문화 형성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타이완에서 제작된 영화드라마 중에는 일본의 만화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 많다. 최근에는 한류 열풍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의 대중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외 관계[]

한국과의 관계[]

중화민국(대만) 대한민국 간의 관계는 항일 투쟁 협력 등을 포함하여 원래 깊었으나(1949년 수교), 1992년에 대한민국(남한)이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수교하자 외교관계가 단절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2만 명의 중화민국(대만) 국적을 가진 화교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대한민국(남한)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중화민국(대만) 국적자이므로 출생 시에 대한민국(남한) 국적을 받을 수는 없다. 비록 외교관계는 단절되었으나 산업, 무역 분야에서는 교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전통적 우방인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으나, 대한민국(남한)이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수교한 이후 공식적 접촉을 시작하여 무역, 관광 등의 민간 교류는 이루어지고 있다. 중화민국(대만)은 대한민국(남한)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지만, 한국-중국 수교 이후에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북한은 중화민국(대만)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몽골을 제외하고 동아시아에서 중화민국(대만)과 수교한 적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다.

외교 문제[]

  • 영토 문제: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마찬가지로 조어도 제도(혹은 센카쿠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화민국(대만)은 센카쿠 제도(조어대)가 타이완 성 이란 현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남중국해에 위치한 난사 군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 양안문제 및 타이완 독립 문제 :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은 양안문제라는 문제에 처해 있다. 이 문제의 원인은 국공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9년 전쟁에서 패배한 국민정부(국민당)는 타이완으로 후퇴하여 타이페이를 수도로 하였고, 무력을 통한 대륙 재탈환을 위한 준비를 계속하였다(이 정책은 1980년대까지 계속된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제7함대를 타이완에 파견하고 1954년에는 국민정부와 공동 방어 조약을 체결하였다.(이 조약은 1979년에 파기되었고 그 이후에는 타이완 관계법이 대신하고 있다.) 서로 다른 체제로 인해 상호 간에는 어느 정도 불신이 존재하며, 타이완(대만)은 자신들이 대륙을 재탈환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국민당은 대륙과의 제3차 국공합작을 통한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반면, 민진당은 타이완이 독자적인 국가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타이완 독립 운동은 타국의 지배에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 건너 온 중화민국(대만) 정부의 국명, 국기, 국가 등을 변경하여 중국에서 완전히 탈피하는 운동이다.} 2000년대 이후 민진당의 집권에 따라 타이완(대만)의 독립을 위한 여러가지 정책들이 행해졌으나, 2008년국민당마잉주(馬英九)가 총통으로 취임하면서 중단되었다.

같이 보기[]

  • 타이완
  • 대만공화국
  • 독립운동
  • 차이니즈 타이베이
  • 중화민국의 외교

주석[]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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