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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파일:Barack Obama.jpg
미국연방상원의원
재임기간 2005년 1월 3일
전임 피터 피츠제럴드
후임 현직
태어난 곳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
지역구 일리노이 주
가족 미셸 오바마 여사와 2녀
종교 개신교(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버락 후세인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bəˈrɑːk hʊˈseɪn oʊˈbɑːmə], 1961년 8월 4일, 하와이 주 호놀룰루 ~ )는 미국정치인으로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민주당 후보이다. 특히 미국 사상 최초의 흑인 후보이기 때문에 그에게 더욱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성장 과정[]

케냐 출신으로 케네디 재단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살때 부모의 이혼과 그 직후 어머니의 인도네시아 거주 동행 등 다양한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다문화 가정이나, 한때 마약에 손을 대는 등 불행한 청년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여 1983년컬럼비아 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시카고 시의 빈민가에서 인권 운동가로 맹활약하였고, 그 이후에는 탁월한 학업 성취를 발휘, 1991년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의 학술지 편집장을 지냈으며 그 직후 수석 졸업하였다. 이후 시카고 시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기독교계의 자선 봉사 단체 및 시민 법률 상담 활동을 하면서 지역 기반을 다졌고, 1990년대에 지역 인권 변호사로 그 명성을 드높였다. 1993년부터 2004년까지 시카고 대학교 법과 대학의 인기 전임강사로서 헌법과목을 지도하여 학술적으로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96년일리노이 주 상원의원(민주, 시카고 남부 제13지역구 대표)이 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활발한 입법활동으로 유명세를 드높였다. 2004년 11월의 미국연방상원의원선거(일리노이 주 대표)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70%의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국 중앙정치무대에서 이라크전에 강력하게 반대[1]한, 유일한 개혁적 아프리카계 정치인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2004년 8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전당대회 기조연설과 2004년, 2006년 선거전 등에서 보여준 천재적인 대중연설 능력과 열성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2007년 2월 제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경선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2008년 6월 3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지명에 필요한 대의원수를 확보하여, 당의 공식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으며 2008년 8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주요 정책과 비판점[]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시절부터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에 거듭 반대해온 그는, 집권시 2008년 3월까지 이라크에 파병된 자국 군인들의 완전한 철수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전국민 건강보험 혜택(당선시 그의 첫 임기 말까지)과 대학 교육 비용 절감 및 중산층서민을 위한 세금제도 개편 등 더욱 적극적인 사회복지정책들을 추진하고, 또한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교토 의정서의 조속한 비준과 더불어 에탄올 등의 대체에너지 개발을 촉진하며, 초고속통신망의 조기 구축을 통한 지식정보화 강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울러, 지나치게 보수적이면서 땅에 떨어진 워싱턴 D.C. 기성 정치권의 신뢰 회복 및 공정하고 투명한 정치제도 개혁을 약속했다.[2] 하지만 반대자(주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공화당의 지지자)들은 그의 핵심공약들과 그 실현 가능성, 특히 추진 비용 등을 문제 삼고 있다.

대 한반도 정책[]

2008년 2월 11일, 오바마는 자신이 속한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남-북한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발표문에서,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는 현 미국 정권의 불안한 접근방식 등으로 인해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보유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면서, '북한에 어떠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이 집권하면, 단호하고 지속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계속 추진할것을 공언했다.[3]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에서는, 체결시 미국의 근로자들에게 매우 불리한 협정이 될것이라며 비준 반대 및 재협상 입장을 밝혔다. 특히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를 파는 만큼 미국도 한국(시장)에 (자국의)자동차를 팔수 있어야 한다'며 자동차시장분야에 문제를 집중 제기하였다.[4]

현재[]

젊은층과 남성 및 사회적 소수계층에서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08년 1월 3일에 치러진 아이오와 주민주당 후보경선에서 38%를 득표하여 30%를 득표한 존 에드워즈와 29%를 득표한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승리하였다.[5] 이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눈앞에 두고 지역별 순회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6월 3일, 당의 공식 대통령 후보로 간주되고 있다. 많은 백인 유권자들이 오바마를 지지하지 않아 인종적 한계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심지어 인종차별을 배격하는 백인들도 아직 흑인 대통령은 시기상조라고 인식하고 있다.

8월말 현재, 델라웨어 주 상원의원 조 바이든(Joseph Biden)을 자신의 부통령 후보(running mate)로 지명했다.[6]

가족으로, 부인인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 1964년 1월 17일 출생, 전 시카고대학교병원 부원장)여사와 두 딸들(말리아, 사샤)이 함께 살고있다.


오바마 vs 매케인[]

2008년 대선에서 맞붙은 오바마와 매케인은 초당적으로 협력했던 시절도 있었다. 상원의원들이 로비스트들의 입김에 휘말리지 않도록 윤리 규정을 강화하는 일과 기후변화협약에 발맞추기 위한 법안이었다. 소속 정당에서 개혁의 기수를 자처하며 초당적 협력을 하던 두 사람은 처음에는 관계가 좋더니 결국은 틀어지고 말았다. 매케인의 경우는 한 번쯤은 안 싸워본 상원의원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예의 바르다는 소리를 제법 듣는 신출내기 오바마가 아버지뻘인 매케인과 신경전을 벌인 것은 예사롭지 않다. 서열이 분명한 상원에서 매케인은 20년 베테랑이고 오바마는 100명 중 뒤에서 두 번째인 99위에 불과했다. ‘OK목장의 결투’라고도 회자되는 아래 이메일 배틀[7]에서 매케인은 오바마에게 ‘이겨도 본전’인 상황이었고, 반면 오바마는 져도 그만이었다. 오바마는 결과적으로 지지 않은 싸움을 한 것이다.


오바마 상원의원님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선거자금 개혁이나 다른 초당적 문제에 대해 함께 일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친구.
따뜻한 마음을 담아, 존 매케인


매케인 상원의원님께,
친절한 편지에 감사드립니다.
이 나라를 새로운 미래로 이끄는 일에 상원의원님과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그리고 '희망'은 제가 자주 쓰는 말입니다.
당신의 친구, 버락 오바마


버락에게
‘이끈다’는 말은 조금 주제넘지 않은가?
상원의원이 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는가, 한 5분쯤 됐나?
나는 아직도 잠깐은 만나고 싶다네.
자네한테 여기 상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말해줄 수 있겠지.
아마 로비스트들이 미끈한 전용 제트기로 나를 워싱턴에 데려다 준 뒤에나 말이야.
자네는 그런 비행기를 아직 본 적도 없겠지.
(✳추신: '친구'는 내가 자주 쓰는 말이네.)
잘 있게, 존


존 보세요.
아마 당신이 말하는 '개혁'은 제 것하고는 정의가 약간 다른 것 같네요.
말이라는 게 세월이 지나면 뜻이 바뀌기도 하거든요.
당신이 포토맥강의 늪지대를 어떻게 쓸어버리고 의사당을 지었는지 듣고 싶군요.
제가 참죠(Tolerably), 버락


배리 ‘후세인’ 보게나.
확인해줘서 고맙네.
자네가 그렇고 그런 녀석이란 걸 진작에 알아 봤는데 전부 사실이었군 그래.
자네는 고매한 척하는 멍청한 풋내기일 뿐이야.
내가 갇혀있던 베트콩 고문 수용소에 자네도 갔어야 했는데 아쉽구먼.
그랬으면 나처럼 단련이 됐겠지.
하긴 그 당시 자네는 소비에트 아프리카에 있는 이슬람 대학에서 마리화나나 빨고 있었겠지.
열 받은(Angrily), 존


'후안 Juan'에게 (후안(Juan)은 존(John)의 스페인어 버전)
당신이 (대통령) 선거를 이길 가망이 전혀 없다는 걸 잠시 잊으셨군요.
정말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죠.
지난번에 들으니까 후안은 파나마에서 태어났다면서요.
그 찌그러지고 늙은 머리를 보면 당신 생년월일이 언젠지 알 수 있지요.
당신 손자 뻘인 테디 루즈벨트가 파나마 운하를 파기 시작하던 1904년 훨씬 이전이 틀림없을 겁니다.
당신이 이라크 전쟁을 100년이나 더 계속하고 싶어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죠.
이런 것들이 죄다 흐릿하게 보이시죠, 할아범.
지옥에나 떨어지시길 '희망'하며, B.
(오바마는 이메일에서 자신의 이름을 ‘버락 오바마’에서 ‘버락’으로, 그리고 다시 ‘B’로 표기했다. 이름 표기와 같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매케인의 신경을 자극하는 오바마의 재치가 돋보인다.)


두 사람의 이메일 배틀이 진행될수록 슬그머니 대통령 선거 얘기가 나오는 걸 알 수 있다. 대선을 염두에 둔 신경전이라는 게 분명해진다. 그러면 대선 전초전 성격의 이 기 싸움에서 누가 이겼을까? 정답을 알려면 2년 전 어느 쪽이 이메일을 언론에 공개했는가를 보면 된다. 오바마 측이다. 적어도 오바마는 늙은 매케인과의 기 싸움에서 자신이 이겼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메일이 언론에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상원의 한 회의장에서 만났다. 매케인이 위원장으로 있는 위원회였다. 오바마는 매케인을 일컬어 '요즘 제가 새로 사귄 펜팔친구 존 매케인'이라고 불렀다. 좌중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승자의 여유라면 여유다. 대체로 사람들은 승자의 농담에 웃음을 크게 터트리는 법이다.

저서 및 관련서적[]

저서의 내역은 한국어판을 기준하였다.

  • 《담대한 희망》(Audacity of Hope), 버락 오바마,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 버락 오바마,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2008년 4월 기준, 한국어판 관련서적 내역은 다음과 같다.

  • 《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 박성래,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 《꿈과 희망-버락 오바마의 삶》, 스티브 도허티, 송정문화사, 2007.
  • 《오바마론(論)》, 마틴 더퓌, 늘봄, 2008.
  •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오바마 연설문 모음집), 모린 해리슨 외, 홍익출판사, 2008.

주석 및 참고자료[]

  1. 그가 2005년에 취임하기 이전에는 러스 페인골드연방상원의원(민주-위스콘신 주)만이 유일하게 이러한 의사를 표명('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마이클 무어, 한겨레출판, 2004 발췌)했으나,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것은 그의 상원의원으로서의 입법활동이 본격화된 이후였다.
  2. 제44대 미합중국 대통령선거 출마선언문(영문), 버락 오바마, 2007년 2월 10일 발표.
  3. 오바마의 '남-북한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 전문, 뷰스앤뉴스, 2008년 2월 15일작성
  4. 버락 오바마, "한미 FTA 반대", mbn, 2008년 4월 16일작성
  5. (속보)오바마, 힐러리 이겨. 아이오와 코커스 '대파란', 뷰스앤뉴스, 2008년 1월 4일 작성
  6. "Journey Begins for Obama, Biden", (영문) The State Journal-Register. 2008년 8월 24일 작성.
  7. 《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박성래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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