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위키아
Advertisement
Disambig 이 문서는 정치인 박순천에 관한 것입니다. 배우 박순천에 대해서는 박순천 (배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박순천(朴順天, 1898년, 동래 ~ 1983년 1월 9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명은 박명련(朴命連).

생애[]

부산진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마산 최초의 여학교였던 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3·1 운동에 참가하였다.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유학을 위장하여 일본으로 피신했으나 3·1 운동 참가 경력이 드러나면서 국내로 압송되어 복역했다. 일본 도피 생활 중 사용한 순천댁(順天宅)이라는 별칭에서 '박순천'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출감후 니혼여자대학 사회학부 여공보전과에서 유학했고 1925년 변희용과 결혼했다. 1939년 여성 교육에 뜻을 두고 황신덕과 함께 경성가정여숙(京城家政女塾, 현 중앙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을 설립했다.

경성가정여숙 부교장이자 여성계와 교육계의 저명 인사로서, 태평양 전쟁 시기에 전쟁 지원을 독려하는 친일 활동을 했다. 1940년 친일 단체인 황도학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1941년부터 조선임전보국단 주최의 강연에 연사로 참여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중 전쟁협력 분야 친일 인물로 선정되었다.

경성가정여숙 학생이었다가 정신대로 지원했던 김금진의 증언을 근거로, 황신덕과 함께 '제자를 정신대로 보낸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1]. 그러나 김금진이 지원해 근무한 정신대는 통상적으로 알려진 위안부와는 다른 여자 근로 정신대이며, 정신대 지원이 없으면 학교가 폐교된다는 협박 때문에 자발적으로 지원한 것이므로 황신덕과 박순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2].

광복 직후 우익 여성 단체인 건국부녀동맹에 참가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 유사한 계열의 독립촉성애국부인회 회장(1947), 《부인신문》 사장, 대한부인회 회장, 대한여자청년단 단장 등을 지냈다.

1950년 대한부인회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부산서울에서 거듭 당선되면서 민주당의 신파 계열에서 여성 정치인의 대표격으로 활동했다. 1950년대 민주당 총재, 1960년대 민중당 대표최고위원, 신민당 고문 등 야당의 지도자를 역임했다.

  • 제2대, 제4대, 제5대, 제6대, 제7대 국회의원이다.

가족 관계[]

  • 아들: 변준오(음식점 "월선옥" 경영)

참고자료[]

주석[]

  1. 《한겨레신문》 (2002.6.18) 박순천/여성·야당 ‘거목’ 정신대 관련 친일행위 오명
  2. 김정빈, 3.1절을 맞는 감회 《미주한국일보》 (2007.3.1)
전 임
(종로구 갑)이윤영
(종로구 을)장면
제2대 국회의원(종로구 갑)
대한부인회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종로구 을: 오하영
후 임
 (종로구 갑)윤보선
(종로구 을)김두한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