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朴鐘喆, 1964년 4월 1일 ~ 1987년 1월 14일)은 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이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박종철은 제5공화국 말기에 공안당국에 붙잡혀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당시 이 사실을 은폐하려던 군사정권은 시민들의 대대적인 저항에 부딪혔고, 결국 6·29 선언을 발표할 수 밖에 없었다.
고문치사 사건[]
공안 당국은 박종철에게 박종철과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종철은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물고문을 하여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박종철은 숨졌다.
경찰에서는 이 사건에 관하여 축소 은폐 보도를 하였다.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던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설득력 없는 해명으로 고문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한동안 군사정권의 비도덕성을 조롱하는 유행어로 널리 사용되었다. 사건 수습을 위해 내무부 장관에 임명된 정호용은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리느냐”며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했는데, 그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이었기 때문에, 이 말 역시 마찬가지로 한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한편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과 안상수 검사 등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 박종철이 물고문에 의해 사망한 것이 밝혀졌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군사독재정권인 제5공화국 정권을 비판하던 국민들은 경찰이 대학생을 고문하여 죽였다는 사건을 접하고 크게 분노하였고,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러던 중 1987년 6월에 연세대학교 재학생인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 6월 10일 서울역 앞 광장에서 이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으며, 대한 성공회 서울교구에 속한 성공회 성당인 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에서도 민주화운동가들이 평신도 봉사자 신분으로 성당안에 들어옴에 따라 6월 항쟁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결국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6·29 선언을 발표했다.
박종철은 2001년 2월 26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명예졸업장을 받았으며, 유족과 당시 학생운동 동지들은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가묘를 만들어 그를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