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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朴燦種, 1939년 4월 19일 ~ )은, 대한민국정치인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고등고시 사법과행정과를 모두 합격하고, 이어 공인회계사시험에도 합격하였다. 검사생활을 하다가 1971년 변호사로 개업했고, 1973년 9대 국회에 여당인 공화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중선거구제에서 야당 거물인 김영삼과 함께 당선되었다. 이어 1979년 10대 국회에서도 당선되지만 10·26 사건 이후 《부끄러운 이야기》를 펴내 독재를 찬양한 과거를 반성하고 공화당 내에서 정풍운동을 주도했다가 당에서 제명되고 야당의 길을 걷게 된다.

11대 국회에서는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했지만, 운동권 학생들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민주화추진협의회의 간사역을 맡기도 하였으며 12대 국회에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서울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야당을 주도했던 김영삼 김대중의 분열로 양김이 각각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공개삭발로 단일화를 촉구했다. 이를 두고 이벤트와 쇼맨십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후 1988년 13대 국회에서는 무소속으로 서울 서초에서 당선되었고, 1990년 3당합당이후에는 여당으로 합류를 거부한 통일민주당 소속 의원인 이기택, 노무현등과 민주당 (이른바 꼬마민주당)을 구성하였다.

1991년 이기택이 김대중의 신민당과 합당하자 이에 합류를 거부하고 신정치개혁당을 창당, 1992년 대통령 선거에 "깨끗한 정치"를 기치로 출마하여,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때 홀로 거리를 누비며 돈안드는 선거유세를 펼쳐 "깨끗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 "무균질우유" 광고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대통령선거 이후 정주영이 탈당하고 무주공산으로 남은 통일국민당 잔류파와 합당하여 1993년 신민당을 결성으나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무리한 당원동원을 행하다 폭력사태로 변질, 소위 "각목전당대회"가 되어 참신한 이미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1995년 서울시장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섰으나 낙선했고,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에 입당하여 지역구를 떠나 전국구에 나섰지만 낙선하고 만다.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선거경선에 나섰으나, 당내조직의 미비로 경선이 불리해지자, 후보에서 사퇴하였다. 후에 이인제가 경선에 불복하고 독자적으로 출마하자, 이인제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에는 독도가 일본령이 될수 있다며 한일어업협정 반대운동을 펼치기도 했었고, 2000년에는 김윤환, 이기택과 함께 민주국민당을 창당하여 부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말았다. 2002년에이회창과 화해하고 그의 선거운동을 돕기도 했다.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평가와는 반대로, "독불장군"이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틀: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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