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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朴泰俊,1927년 9월 29일~ )은 포항제철(포스코의 전신)을 설립한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민주정의당 대표, 국무총리를 지낸 정치인이다. 호는 청암(靑岩)이다.

생애[]

1927년 동래군 장안면에서 태어나, 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자랐다. 1945년 와세다 대학 기계공학과에 입학하였으나, 해방으로 학업을 중단한 후 귀국하여 1948년 육군사관학교를 6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로 임관하였다. 한국전쟁에 출전하여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등을 수훈하였다. 포스코를 세계적 철강기업으로 성장시킨 박태준씨는 1961년 단국대학에 편입해 1963년 8월 정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태준씨(육사6기)를 비롯해 당시 국군장교로 근무하던 많은 분들이 정부의 조치로 4년제 정규대학의 학사학위과정을 이수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 해방이후 국군에 근무하던 분들이 정규 학위과정을 이수하지 못한채 현역으로 복무했고, 또 정규 육군사관학교가 (11기 이후) 뒤늦게 신설되어 정부차원의 학사학위과정 위탁교육이 필요해서 취해진 조치인 듯 보인다.

5.16 군사정변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으나 박정희가 쿠데타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쿠데타 전날 가족을 맡겼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상공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입안에 관여하였다.

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후 경제인으로 변신, 1964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임명되어 1년 만에 대한중석을 흑자기업으로 바꾸었고, 1968년 4월 포항제철의 초대 사장이 되어 10년 만에 연 55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경제 제1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하여,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전국구)로 당선되어 국회 재무위원장을 역임하고, 1988년 민주정의당 대표를 맡았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이 되었으나, 김영삼과의 불화로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김영삼 집권 이후 포철 협력사들로부터 39억여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한동안 외국을 떠돌았는데, 여기에는 표적수사라는 의혹이 있다.

1997년 김영삼 정부의 경제적 실패를 공격하면서 포항시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정치적으로 재기하였다. 같은 해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총재가 되고, 김종필과 함께 김대중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선을 지원하였다.

2000년 국무총리가 되었으나,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으로 4개월 만에 사임하였다.[1]

현재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포항제철을 경영하면서 사원들의 복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최고 수준의 주택단지를 조성하고, 사원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86년 포항공과대학교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같이 보기[]

  • 포항공과대학교

참고 자료[]

  • 틀:헌정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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