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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潘基文, 1944년 6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다. 2006년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이었으며, 국제 연합 사무 총장에 당선되어 2007년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생애[]

약력[]

그는 1944년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고 충주중학교, 충주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충주고등학교 재학시절 미국에 가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일로 인해 외교관의 꿈을 품게 되었다. 1970년 2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2월 외무고시를 합격하고 3월 외교부에 들어갔다.

그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을 자녀로 두고 있고, 모국어인 한국어영어에 능통하며,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도 구사한다.

외교관 경력[]

파일:Ban Ki-moon and Condoleezza Rice.jpg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와 함께

1972년 주 인도 대사관 부영사, 1974년 이등 서기관 등을 지내고, 주로 국제조직을 거쳐 1980년 외교부 국제조직조약국 과장이 되었다. 외교부 지원으로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으로 유학하였으며, 1985년 4월 졸업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4월 총리 의전비서관, 1987년 7월 주미 대사관 총영사, 1990년 6월 외교부 미주국장, 1992년 2월 외교부 장관 특별보좌관, 1992년 9월 주미 공사, 1995년 2월 외교부 외교정책실장, 차관보를 역임했다. 1996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의 외교안보수석이 되었다. 2000년 1월 외교통상부차관, 2001년 9월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 2002년 9월 본부 대사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보좌관을 지냈으며, 2004년 1월 외교통상부장관이 되어 2006년 11월까지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국제연합 사무총장[]

2006년 2월 14일에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였으며 2006년 10월 14일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코피 아난의 뒤를 잇는 차기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2007년 1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됐다.

반기문 국제 연합 사무총장은 효율적인 기구 운영을 위한 개편 작업에 착수했으나 시작부터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2007년 2월 6일 국제 연합 총회장에서 192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반 총장은 비대해진 국제 연합 평화 유지 활동국(DPKO)을 업무별로 2개 부서로 분리하고 군축 부서를 사무총장 직속에 두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제 연합 평화 유지 활동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또 기구 개편안에 대한 회원국들의 지지를 촉구했다.

반 총장의 제안에 대해 개도국들은 사실상 군축국의 약화라며 반발하며 거절했다. 개도국 대표들은 반 총장의 개혁안이 전세계적으로 필요성이 증대한 평화유지군을 위태롭게 만들고 강대국 군축 문제를 핵심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반 총장은 전체 회원국 대표를 상대로 협조를 구하는 연설을 했다.

직인[]

반기문 사무총장은 삼족오가 새겨진 사무총장 직인을 증정받아 사용하고 있다. 한국 전각의 대표적 명인 정병례가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의 의뢰로 작업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인 2006년 12월 11일 완성한 직육면체의 직인은 가로·세로 7cm에 높이 18.5cm 크기로 삼족오를 주제로 제작됐다.

밑바닥에는 포효하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힘찬 날개짓을 하는 삼족오와 이글거리는 태양을 배경으로 ‘Ban Ki-moon Secretary-General The United Nations(국제연합 사무총장 반기문)’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옆면 4곳에는 삼족오와 태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삼족오 직인은 2007년 1월 12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제3회 한국 이미지 디딤돌상 수상식에서 상을 받은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전달되었다.

관련 항목[]

  • UN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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