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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aek nak jun.JPG

백낙준(1960년경)

백낙준(白樂濬, 1895년 3월 9일 ~ 1985년 1월 13일)

호는 용재(庸齋), 영어명 조지 백(George Paik)이다. 연세대학교의 교육과학대학인 '용재관'은 그의 호를 따서 이름 지어졌다.

평안북도 정주 관주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영창소학교, 신성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천진의 신학서원을 거쳐 1916년 미국의 예일 대학교로 유학한 미국 유학파 학자이다. 이러한 백낙준의 친일 역사는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연희전문학교의 교수직을 맡게 되는 1927년부터 시작된다.

1927년, 친일교육자 유억겸의 배려로 연희전문학교의 교수로 일하게 된 백낙준은 같은 기독교계 학교인 이화전문학교 등에도 출강하며 당시 이 학교 학감이던 김활란 등과도 교분을 쌓게 된다. 백낙준은 이 밖에 당시 보성전문학교를 경영하고 있었던 김성수와도 교분을 쌓았다.

1945년 12월 18일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맡았고, 1946년에 연희전문이 연희대학교로 승격하면서 총장을 맡아 1957년 3월까지 재임하였다.

1950년부터 1952년 10월까지는 문교부 장관을 맡아 한국전쟁 중의 교육문제 해결에 진력하였다.

1960년부터 1961년까지 제5대 국회의원(참의원)이었다.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목록 참조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에 선정되었다. 연세대학교 교내 단체인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2005년 선정 발표한 '연세대학교 친일파 명단'에도 들어 있다[1].

전 임
안호상
제2대 문교부장관
1950년 5월 4일 - 1952년 10월 29일
후 임
 김법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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