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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태(卞榮泰, 1892년 서울 - 1969년 3월 10일[1])은 대한민국의 전 국무총리였다. 호는 일석(逸石)이다.

1912년 만주의 신흥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부터 1945년까지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1945년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51년 외무부장관이 되어 파키스탄라호르에서 개최된 에카페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한국 전쟁으로 인한 대한민국 사정의 어려움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이 회의에 참석할 때 가지고 간 여행경비를 남겨서 돌아올 정도로 청렴하고 곧은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 [2]

제7~9차 국제 연합 총회에서 한국대표로 활동했다. 1953년 5월 29일 한국전쟁의 휴전 후 5개 중립국의 한국 내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전 한국군을 유엔군 산하에서 탈퇴시키겠다고 유엔군을 위협하였다.[3] 1953년 10월 1일, 워싱턴 D.C.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였다.[4] 1954년 5월 22일, 외무부장관으로서, 한국 통일문제를 제안하였다.(제네바제안) [5] 1962년 고려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에 〈외교록〉, 번역서로는 〈논어〉(영역)가 있다.

형은 변영만(卞榮晩, 1889년∼1954년), 동생은 변영로(卞榮魯, 1898년 5월 9일∼1961년 3월 14일)이다.

전 임
임병직
제3대 외무부장관
1951년 4월 16일 - 1955년 7월 28일
후 임
 조정환 
전 임
백두진
제5대 국무총리 [6]
1954년 6월 27일 - 1954년 11월 28일
후 임
 백한성 

참고 자료[]

주석[]

  1. 《한국일보》 (1969.3.11) 前 總理 卞榮泰씨 別世
  2. 《동아일보》 (1969.3.11) 에피소드로 본 逸石편모
  3. 이호재,《한국외교정책의 이상과 현실:이승만외교와 미국정책의 반성》(법문사,2000) 449~451쪽.
  4. 김창수,〈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행정협정〉,《역사비평》,제54호(2001년 봄),430쪽.
  5.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남측자료] 변영태 외무부장관, 한국통일문제 제안 (54.5.22 제네바제안)”. 2008년 2월 15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6. 같은 기간 동안 외무부장관을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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