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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알찬 글 딱지 틀:대학 정보 서울대학교(서울大學校, Seoul National University, 약칭 SNU)는 여러 개의 단과대학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한민국 최초[1], 최대의 국립 종합대학이다.[2][3]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봉천동과 종로구 연건동에 캠퍼스가 있으며, 16개의 단과대학, 1개의 일반 대학원, 6개의 전문 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자취[]

1946년 7월 13일 미 군정청 문화교육부는 ‘국립서울종합대학안’을 공식 발표했다. 서울대학교에 따르면, 조선교육심의회에서 현대적 국립대학을 건립할 때 경성대학을 중심으로 여러 관ㆍ공립 및 사립의 전문학교를 통합하자는 구상이 있었다고 한다.[4] 1946년 8월 22일에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이 공포됨으로써 서울대학교는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법령의 내용은 경성대학을 중심으로 여러 관·공·사립 전문학교를 통합하여 종합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초대 총장으로 엔스테드(Harry B. Ansted) 해군 대위가 취임하였다.[5] 그러나 설립 과정에서 기존 대학에 있던 교수, 직원, 학생들은 반대 운동을 강렬히 전개했으며, 이를 국대안 파동이라 부른다.

한국 전쟁의 발발로 1951년부터는 부산으로 옮겨가 전시 연합대학의 형태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이듬해 5월에 전시 연합대학은 해체되었으며, 그 다음해인 1953년 9월 18일이 되어서야 본부와 문리과 대학이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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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서울대 총장 이장무

1960년에는 독재 정권에 항거한 4·19 혁명으로 서울대 학생 7명이 사망했으며, 그 해 11월 민족통일연맹이 결성되었다. 4·19 혁명이 끝나고 대학에는 학생회 조직과 같은 자율적인 분위기가 잠시 조성되었으나, 이듬해 5·16 군사 정변으로 탄압이 다시 이어졌다.[6] 1960년대는 이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이 계속 이어지는 시기였다.[7] 한편 1961년에는 정부의 ‘국립대학 정비절차’에 따라 많은 사범대 학과가 폐지되고 문리대로 합쳐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범대 교수와 학생들은 이에 거세게 항의했으며, 이듬해 정부는 없어진 학과들을 다시 부활시켰다.[8]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 단과대학들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문리과대학, 법과대학), 연건동(의학부), 을지로(상과대학), (현) 노원구 공릉동(공과대학), 경기도 수원시(농과대학) 등 곳곳에 나뉘어 있었다. 이에 서울대는 종합화 계획을 세우고, 1975년 농과대학(현재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과 의과대학 본과만을 제외하고 단과대학들을 모두 새로 세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다. 새로 지은 관악캠퍼스의 상징인 교문은 1978년에 설치가 완료되었다.[9] 수원에 남아 있던 단과대학도 2003년에 관악으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현재와 같이 관악과 연건 캠퍼스만 남게 되었다.[10]

한편 10월 유신 이후 계속 억눌려 있던 대학에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1991년에 총장 선출 방식도 직선제로 변경되었다.[6] 첫 직선제 총장인 김종운을 시작으로, 이수성, 선우중호, 이기준, 정운찬이 총장으로 뽑혔으며, 2006년 이장무가 제24대 총장으로 선출되어 재임 중이다.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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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관악캠퍼스

서울대학교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관악캠퍼스와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연건캠퍼스로 이루어져 있다.

대학 본부가 있는 관악캠퍼스는 1975년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조성되었다. 1970년대 1만4천여 명이었던 학생수가 1980년대에는 2만4천여 명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시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1987년 "서울대학교 발전장기계획-캠퍼스부문계획"이 수립되어 시설면적이 기존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났다.[11] 현재 관악캠퍼스에 있는 약 200개의 건물 중 절반은 1990년 이후에 지어졌으며,[12] 캠퍼스를 감싸고 있는 순환도로의 길이는 약 5킬로미터이다.[13]

관악캠퍼스의 정문을 이루는 구조물은 국립서울대학교의 머리글자인 ‘ㄱ, ㅅ, ㄷ’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개교 60주년을 맞아 은회색을 입혔다. 정문 디자인을 새롭게 구상한 디자인 학부의 백명진 교수에 따르면, 중립적인 색상인 은회색을 통해 공적인 교육 공간의 느낌을 표현하였고 조명을 설치해 24시간 열려 있는 서울대의 이미지를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14] 서울대 정문은 지하철 서울대입구역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15] 정문 근처에는 경영대 건물이, 반대편인 산 중턱에는 신공학관을 비롯한 공대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정문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오르면 후문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낙성대역에 이르게 된다. 후문 곁에는 관악사와 호암교수회관이 위치해 있다. 한편 경영대에서 문화관-중앙도서관-공대 폭포로 캠퍼스를 관통하는 길은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되어 있다.[13] 걷고 싶은 거리는 주위 조경과 보도를 정비하였으며 밤에는 은은한 조명 시설이 걷고 싶은 거리를 비춘다. 한편 학교가 관악산을 끼고 있기 때문에 등산객들에게 관악산 정상 등반을 위한 등산로도 애용된다. 신공학관 부근에서 ‘자운암’이라고 쓰인 표지판 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관악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에는 캠퍼스 내 벚꽃, 진달래, 개나리의 만개로 상춘객의 발길이 빈번하다. 2008년 4월 25일, 서울대는 캠퍼스 안에 있는 규장각, 미술관, 박물관, 문화관, 중앙도서관 등 5개 거점 문화시설을 활용해 ‘문화 캠퍼스’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으며, 그 첫 프로그램으로 26일 학부모 3천여 명을 초청해 문화 행사를 개최했다.[16][17]

옛 경성제대 의학부 자리에 터를 잡은 연건캠퍼스에는 의대, 치의대, 간호대가 있으며, 서울대병원 본원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대학로창경궁로 사이에 있으며, 혜화역에서 가깝다. 서울대병원 본관이 캠퍼스의 중심에 있으며, 의대본관, 함춘회관 등이 대학로 쪽에, 치과대학이 창경궁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이 있던 수원캠퍼스는 이들 단과대학이 2003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매각이 추진 중이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18] 서울대는 또한 전라남도 구례군광양시 등지에 200㎢에 가까운 연습림을 소유하고 있다.[19] 현재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에 KAIST와 함께 국제 과학 복합 연구 단지를[20], 경기도 수원시에 차세대 융합 기술 연구원을[21], 강원도 평창군에 그린바이오 첨단 연구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22] 과거 서울대 사범대학 부속국민학교가 사용하던 서울 중구 을지로의 땅은 현재 국방부와 법률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해당 토지의 크기는 약 4만㎡ 정도로 현재 미군 극동사령부 공병단이 점유하고 있다.[23]

부속 시설[]

기록관[]

1997년 7월 서울대학교 기록 및 역사 보존을 위해 설치된 대학 사료실에서 출발하였다. 2001년 9월 현재의 명칭인 기록관으로 개칭되었다. 서울대학교와 관련된 역사 기록 및 행정 문서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다. 기록관에 소장된 기록물은 서울대학교의 역사적 발전과 변천을 보여주는 학교사 자료와, 학생 운동 관련 자료, 교수 및 동문 등이 기증한 개인 컬렉션 등이다. 일반인도 열람 및 복사가 가능하다(단 개인 정보가 포함된 자료는 부분열람만 가능) 현재 약 5만여 건의 서울대 관련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 기록관홈페이지를 통해 기록물을 기증할 수도 있다.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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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사 운동장

서울대학교 관악사는 학부생과 대학원생 및 가족이 거주하는 기숙사이다. 1975년 8월 서울대학교 설치령 제 14조에 의거하여 관악사 5개동과 후생동 1개동 개사하였으며 당시 수용 인원은 남학생 970명이었다. 여학생 거주동은 1983년 2월에 개사되었고 관리동은 1989년 9월에 개사했다. 1996년 8월 대학원 가족 생활동이 200세대의 수용 규모로 개사하였다. 2007년 6월을 기준으로 관리동 1동, 후생동 2동, 학부동 12동, 대학원동 6동이 있고 1인실, 2인실로 구분되며 총 3,680명의 수용 규모를 갖추고 있다.[24] 현재 사감은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이건수 교수이다.[25] 다른 학교들과 달리 특별히 제한된 출입 시간은 없는 것이 특징이다.[26] 서울대학교 관악사는 재건축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방 크기를 두 배로 늘리고 방마다 욕실을 구비하며, 골프 연습장ㆍ공연장ㆍ체육관ㆍ커피숍 등의 편의시설도 갖출 것으로 알려졌다.[27] 공사는 2008년 2월 시작돼 관악사 구관과 운동장 부지에 8~9층 건물 7개 동이 들어서게 되며 오는 2011년 2학기부터 입주를 시작한다. 관악사 구관은 현재 1300여 명보다 2천 명가량 늘어난 3500명의 사생을 수용하게 된다.[28] 7억9천여만 원이 투입된 관악사 운동장이 재건축 사업으로 인해 개장 1년 반 만에 없어지게 되어 학생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다.[29] 2008년 현재 917동이 공사에 들어가고 있다.

서울대학교 연건사는 의과대학 등이 있는 연건캠퍼스에 위치한 기숙사로 일반 사생동은 553명, 가족 생활동은 17세대의 수용 규모를 갖추고 있다. 함춘사는 130명, 국제 회관은 51명이 그 수용 규모이다.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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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도서관 통로의 야경

1946년 개교하면서 경성대학의 건물과 서적을 이어받아 개관하였다. 1949년 도서관 명칭을 ‘국립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에서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변경하였다. 1975년 1월 본관을 관악캠퍼스로 옮기면서 도서관 명칭을 ‘서울대학교도서관’으로 변경하였고, 1992년 다시 ‘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으로 변경하였다.[30] 수원캠퍼스에 있던 농업생명과학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2005년 농학도서관도 수원캠퍼스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다. 2006년 현재 분관으로 사회과학도서관, 경영학도서관, 농학도서관, 법학도서관, 의학도서관, 치의학도서관, 국제학도서관 이렇게 7개가 있다. 중앙도서관은 관악캠퍼스 62동으로 대학 본부 뒤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2005년 12월 31일 현재, 분관을 포함한 총 장서량은 약 260만 권이다.

도서관 내 열람실은 재학생 전용 열람실과 일반인도 사용가능한 열람실로 나뉜다. 그동안 국립 대학교라는 성격에 비추어 지역 주민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전 열람실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운영되어 왔는데,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열람실 부족으로 인해 학내에서 개방 여부에 따라 토론이 계속 있어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람실 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현재는 일부 열람실의 일반인 출입은 제한하게 되었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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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미술관

1995년 미술대학 동양화과 이종상 교수가 미술관의 건립 건의안을 냈으며, 삼성문화재단의 기증으로 만들어졌다. 설계는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가 맡았으며, 지상 3층, 지하 3층, 연면적 1357평의 규모로 삼성물산에서 시공을 맡았다. 2003년 관악 캠퍼스 정문 옆에 착공해서, 2005년 완성, 2006년 6월 8일 개관하였다. 건물의 절반이 지면에서 떨어져 떠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 내에 기둥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나선형 계단으로 각 층이 연결돼 있는 독특한 구조로 국내 미술계와 건축계의 주목을 받아왔다.[31] 현재 2006년 취임한 미술대학 동양화과 정형민 교수가 미술관장을 맡고 있다. 2007년 10월 9일 마르크레테 2세 덴마크 여왕이 방문하기도 했다.[32]

박물관[]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관악캠퍼스에 있는 부속박물관이며, 1946년 대학의 설립과 함께 ‘서울대학교부속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하였다. 이는 1941년 세워진 경성제국대학 진열관의 동숭동 건물과 유물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1975년 중앙도서관 6층으로 옮겨졌으며 이름도 ‘서울대학교 박물관’으로 변경되었다. 1993년 동원관 옆에 있는 현재의 신축 건물로 이전되었다.[33]

1층에는 고고역사와 현대미술 및 기획물을, 2층에는 인류민속과 전통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상설 전시물로는 발해 소조불상, 근역화휘, 김홍도와 장승업의 작품을 비롯하여 각종 고고유적 출토물과 자연사 표본 등이 있다. 현 박물관장은 인문대 국사학과 교수 송기호이다.

언어교육원[]

언어교육원은 서울대 구성원에게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며, 외국인에게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34] 이 밖에도 영어능력검증시험인 TEPSSNULT 등 여러 언어능력측정 시험을 연구 개발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35] 언어교육원은 1963년 1월 동숭동 캠퍼스에서 ‘어학연구소’란 이름으로 설립되었고,[36] 2001년 현재 이름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언어교육원은 관악캠퍼스 수의대와 행정대학원 옆에 위치에 있으며, 연건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 원장은 영어영문학과 교수 홍기선이다.

기초교육원[]

2002년 서울대학교는 대학생들의 기본 소양과 각 전공의 기초 지식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초교육원을 별도로 설치했다. 서울대학교 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TEPS 평가), 수학, 물리 성취도 평가를 담당하고 있으며 성적에 따라 수준에 맞는 기초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핵심교양의 지정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주제와 수업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현 원장은 법과대학 박은정 교수이다.

기타 시설[]

대학생활문화원은 학생들의 심리검사 및 상담을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962년 2월 ‘학생지도연구소’로 설립되었다. 1964년 의과대학 함춘회관으로, 1975년 관악캠퍼스 학생회관으로 장소를 옮기었다. 2001년에 명칭을 대학생활문화원으로 변경하였다.[37] 현 원장은 심리학과 교수 권석만이다.

학생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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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및 동맹 휴업 총투표 결의 후 행진하는 서울대학생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군부독재 정권 시대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끈 주요 대학 학생회 가운데 하나이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화의 달성과정에서 서울대학교 학생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2007년을 기점으로 50대를 맞았으며, 4.19기념 대행진, 봄 대동제(5월), 농촌활동, 가을 대동제(10월), 총학생회 선거(11월) 등을 기획한다.[38] 2006년 황라열 총학생회장의 탄핵과, 송동길 부총학생회장의 사퇴로 한동안 단대 회장단 회의 체제로 운영되었다.[39] 선거는 매년 11월에 열리지만, 2006년 선거 당시 투표율이 낮아 2007년 4월에 재선거가 있었으며, PD(민중 민주의 약자, 평등파) 계열인 한성실·박찬섭 후보가 각각 회장과 부회장으로 당선되었다. 2007년 선거에서는 비 운동권 계열인 실천 가능 선거운동본부의 전창열 후보가 당선되었고, 학생 복지 중점의 활동을 하고 있다. 2008년 11월 18일부터 11월 26일(연장투표 포함)까지 진행된 제 52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실천가능 선거운동본부의 박진혁 후보가 45.2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학생 동아리는 본부에 소속된 단체와 단과대학에 소속된 단체로 나뉘어져 있다. 본부 동아리의 수는 2006년 현재 103개이다.[38]

서울대학교에는 체육 특기생이 없지만, 야구를 비롯한 축구, 농구부 등이 존재한다. 1977년 창단한 야구부는 199패 1무 뒤에 2004년 첫 승을 거뒀으며,[40] 축구부도 역시 같은 해인 2004년에야 18년 만에 우승을 맛보았다.[41] 농구부도 기록은 좋지 않아, 2001년 이후로 무승을 기록하고 있다.[42] 다만 서울대 복싱부는 2001년부터 대학 복싱 동아리연합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네 번이나 차지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43]

교내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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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캠퍼스 75동에 자리 잡은 대학신문사

주간지로 《대학신문》이 있다. 대학신문은 1952년 2월 4일 한국전쟁 피난 중에 창간되었으며, 1953년 서울 동숭동으로 이전하였고, 1958년부터 고교판을 발행한 적도 있다. 1960년 재정난으로 한때 발간이 중지되기도 하였다. 1975년 관악캠퍼스로 옮겼으며 오늘날까지 발행해오고 있다. 창간 당시에는 유료(500원)였고 한때 주 2회 찍어내던 적도 있으나, 현재는 매주 월요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방학이나 시험기간에는 발행하지 않는다.

월간지 《서울대저널》은 1995년 총학생회에서 《우리세대》란 이름으로 창간했다. 1997년 총학생회에서 벗어났으며, 2001년 《서울대저널》로 이름을 바꾸었다.[44] 《교지 관악》은 1990년 창간되었으며, 1년에 두 번 매 학기 말에 발행되고 있다. 본래 총학생회 산하에 있었으나, 2006년 총학생회회칙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되었다.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는 2002년 시작하여 꾸준하게 발행되고 있으며, 2001년 문을 연 인터넷 뉴스 ‘스누나우’는 2007년 종간하였다.[45] 2000년 개설된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커뮤니티 사이트 ‘스누라이프’는 학내 뉴스, 선거소식과 역사, 교수들과의 대화 등의 내용을 제공하는 등 언론으로서의 기능도 일부 담당하고 있다.

위상[]

대한민국 정부가 시행한 대학입학 자격시험의 수석들이 주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46], 졸업생들이 대한민국 정·재계에 대거 포진되어 있다.[47] 많은 인재를 배출해내고 있는 동시에, 대한민국 학벌주의의 정점에 서있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48]

영국 타임스지가 발표하는 200대 세계 대학 순위에서 서울대에 대한 평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5년 93위로 처음 100위권에 진입한데 이어, 2006년에 63위, 2007년에는 51위를 차지했다.[49] 한편 상해 교통 대학에서 발행하는 《ARWU》 2007년 보고에서, 서울대는 세계 500대 대학 중 151~202위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19~24위로 타임스지보다 다소 낮게 평가되었다.[50] 서울대는 2015년까지 세계 30대 대학에 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지만, 대학 순위는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많다.[51]

대학 및 개설 학과[]

학부 과정[]

현재 16개 단과대학에 84개 학과(부)가 설치되어 있다.[52] 단과대학별 개설 학과는 다음과 같다. 단, 치의예과 및 치의학과는 2002년 학번 50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신입생을 받지 않으며, ‘치의학전문 대학원’ 제도로서 대학원에 통합되었다. 또한 2009학년도부터는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의 개원으로 법학부의 신입생을 받지 않는다. 2008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주전공 외에 복수 전공, 연합 전공, 연계 전공 등 다른 학과의 학점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제2전공제 의무화가 실시되었다.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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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병원이 함께 있는 연건 캠퍼스

일반 대학원과 전문 대학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 대학원은 석사 과정은 5계열, 71학과(부), 27협동과정이, 박사 과정에는 5계열, 72학과(부), 26협동과정이 설치되어 있다. 전문 대학원에는 현재 6개가 있으며, 박사 과정은 국제학과에만 존재한다.[52] 서울대학교는 또한 2008년 법학전문 대학원 유치에 성공하여 법학전문 대학원의 인가 및 정원에 관한 심의 기구인 법학교육위원회으로부터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의 정원을 150명로 배정받았다. 개원은 2009년 3월로 예정되어 있다. 전문 대학원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둘러보기[]

  • 서울대학교 출신 인물
  • 서울대학교 총장의 목록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주석[]

  1. 한양대 설립자 김연준 리더십 연구. 신동아, 2007-12-26.
  2. 서울대학교 연혁
  3. 교육인적자원부 2005년도 10월말 기준 자금집행실적 및 집행전망 제출.
  4. 서울대학교 연혁.
  5. 서울대학교 창설 관련 기록
  6. 6.0 6.1 “개교60년 서울대 세계와 경쟁하라”. 경향신문. 
  7. “27년 만에 빛 본 1980년 ‘신동아’ 계엄검열 삭제 기사 ‘4·19에서 10·26까지 학생운동이 걸어온 발자취’”. 신동아. 
  8. “파란만장했던 학제 변천사”. 대학신문. 
  9. 서울대학교 발자취 1970년대
  10. 서울대학교 발자취 2000년대
  11. 관악 캠퍼스, 왜 이렇게 무질서한 미로 공간이 됐나, 대학신문, 2008년 4월 12일.
  12. “00~06학번들의 캠퍼스 ‘공사판의 추억’”. 한겨레신문. 
  13. 13.0 13.1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잖아요' 숨겨진 서울 산책 코스 세 곳”. 중앙일보. 
  14. 서울대의 얼굴, ‘빛이 난다’, 2006년 9월 16일.
  15. “관악구청 앞~서울대 정문 1500m ‘디자인 서울거리’ 추가 선정”. 시민일보. 
  16. 서울대 “SHOW를 하라”, 동아일보, 2008년 4월 26일.
  17. 학부모 여러분, 서울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학신문, 2008년 5월 4일.
  18. 김소민. “애물단지가 된 서울대 수원캠퍼스”. 헤럴드경제. 
  19. 강동호. “서울대 보유 토지 여의도의 23배 달해”. 서울경제. 
  20. 문혜정. “서울대 (BT)ㆍKAIST (IT) 청라에서 만난다”. 한국경제. 
  21. 김은경. “〈경기〉 경기도·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원 ‘협력’”. 데일리안. 
  22. “〈평창〉 서울대 연구단지 조성사업 윤곽”. 강원일보. 
  23. 나경수 기자. “서울대-국방부, 서울 을지로 '땅 싸움' 점입가경”. 뉴시스. 
  24. 서울대학교 관악사 연혁 및 현황
  25. 서울대학교 관악사 구성원 소개
  26. 서울대학교 관악사 생활 수칙
  27. 서울대 기숙사 33년 만에 화려한 변신, 연합뉴스, 2007년 12월 30일.
  28. 관악사 구관, 2011년부터 3500명 수용, 대학신문, 2007년 5월 19일.
  29. 관악사 재건축 7억 9천 예산낭비, 대학신문, 2007년 5월 5일.
  30.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연혁
  31. `문화 향연'에 흠뻑 취한 서울대생 학부모들, 연합뉴스, 2008년 4월 26일.
  32. 마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 서울대 미술관 방문, 연합뉴스, 2007년 10월 9일
  33. 서울대학교 박물관 발자취
  34. 언어교육원 공식 홈페이지
  35. TEPS 공식 홈페이지
  36. 언어교육원 공식 홈페이지
  37. 대학생활문화원 공식 홈페이지
  38. 38.0 38.1 2007년 서울대학교 요람집
  39. 박성미 기자. “송동길씨 사퇴 발표”. 대학신문. 
  40. “서울대 야구부, 창단 28년 만에 첫 승”. 연합뉴스. 
  41. “서울대 축구승리 “18년만이네”…순수 아마팀…86년 후 1무가 최고”. 국민일보. 
  42. “꼴찌의 도전, 서울대 농구부”. 세계일보. 
  43. “서울대는 돌주먹…각종 아마복싱대회서 우승 휩쓸며 최강군림”. 스포츠칸. 
  44. http://www.snujn.com/introd.php
  45. “마지막 편집장 되고 싶지 않았지만…”. 미디어오늘. 
  46. 현원섭, "대입 수석 합격자 23인의 인생 스토리", 월간중앙 2월호 (2000)
  47. 강준만. “학벌 엘리트여, 학원에 감사하라”. 한겨레21. 
  48. “〈서울대 개교 60주년〉 6·25때 부산 피란… 91년에 첫 직선총장”. 서울신문. 
  49. 이덕원. “서울대 「더 타임스」 대학평가 세계 51위”. 대학신문. 
  50. Top 500 World Universities (101-202)
  51. 박상준. “한국대학 '못말릴 순위病'. 한국일보. 
  52. 52.0 52.1 서울대학교 요람/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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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서울대학교 틀:대한민국의 국립 고등교육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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