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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희(申翼熙, 1892년 6월 9일 - 1956년 5월 5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태어나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 일본의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에 유학하였다. 그곳에서 한국 유학생들과 학우회를 조직하여 임원을 맡았으며, 기관지 <학지광(學之光)>을 발간하면서 학생운동을 하였다. 1913년 졸업하여 귀국, 고향에 동명강습소를 열었으며, 서울 중동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 교수가 되었다. 1918년 최린(崔麟)·송진우(宋鎭禹) 등과 독립운동을 논의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때는 해외와의 연락 임무를 맡았다. 3·1운동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에 참여 내무차장·외무차장·문교부장, 내무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1945년 12월 3일 임시정부 제2진으로 군산 비행장으로 입국, 귀국한 후, 김구(金九) 등 임시정부 계통과는 노선을 달리하여 정치공작대·정치위원회 등을 조직하여 이승만(李承晩)과 접근하였다. 1945년 12월 중순, 송진우의 초대로 서울 관수동 국일관에서 열린 주연에서 한국민주당 측 인사들을 가리켜 친일파 라고 주장하여,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1946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 초대학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46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대의원에 피선되고 1947년 의장이 되었다. 또한 1947년 지청천(池靑天)의 대동청년단과 합작해 대한국민당을 결성하고 대표최고위원이 되기도 하였다.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 국회 부의장이 되었다가 의장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의장에 피선되었고, 정부 수립 후 이승만과 멀어지기 시작한 한민당김성수(金性洙)의 제의를 받아들여 1949년 민주국민당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 다시 국회의장에 피선되고 1955년 민주국민당을 민주당으로 확대·발전시켜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5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 자유당의 이승만과 맞서 호남지방으로 유세가던 도중 전북 이리(현 익산)에 이르러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급사하였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훗날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전 임
-
제헌 국회의원(광주군)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무소속
후 임
신익희
전 임
신익희
제2대 국회의원(광주군)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민주국민당
후 임
신익희
전 임
신익희
제3대 국회의원(광주군)
1954년 5월 31일 - 1956년 5월 5일
민주국민당
후 임
최인규

틀:1996년-이 달의 독립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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