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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영(申泰英, 1891년1959년)은 일제 강점기일본군 군인이며 대한민국 육군 장성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14세 때에 대한제국의 육군유년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이어서 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12년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5월 28일 26기로 졸업하였다. 졸업 동기 중 한국인은 후에 일본군 중장을 지낸 홍사익을 비롯하여 지청천, 이응준, 조철호 등 13명이었다[1].

그는 광복 당시 일본군 육군중좌였다. 광복 후 육사 동기생 대부분이 남조선국방경비대에 참여하였으나, 그는 근신하는 뜻으로 군문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뒤 여순 14연대 반란사건이 터진 이후 자진 입대, 1948년 11월 대령계급과 함께 육군본부 행정참모부장 겸 국방부 제1국장이 되었다.

1949년 준장으로 진급, 호국군참모부장이 되었으며, 1949년 10월 소장진급과 함께 제3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으나 재임 기간 7개월 만인 1950년 4월에 스스로 물러났다. 그것은 당시의 국방부 수뇌들과 의견이 맞지 않았고, 정세 판단에서도 낙관적인 견해를 보인 당시의 미국 고문관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라북도편성관구장으로서 이 지역의 방어에 임하였다. 그러나 이 때도 당시의 국방장관 신성모와 작전상의 의견충돌을 빚었으며 이에 따라 1950년 7월 해임되었다. 1952년 1월 복직되면서 곧 중장으로 승진하였으며, 예편과 동시에 국방부장관이 되어 휴전협정이 성립되기 직전까지 1년 3개월간 재임하였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에 선정되었다.

가족 관계[]

  • 아들: 신응균(申應均), 1961년에 국방부 장관 직무 대리 역임. 한국군 "포병의 아버지"라 불림.
  • 아들: 신박균, 한국 전쟁 때 전사.

참고 자료[]

주석[]

  1. 역사문제연구소. 《인물로보는 항일무장투쟁사》. 서울: 역사비평사. 146쪽쪽. ISBN 8976962249. 
전 임
이기붕
제4대 국방부장관
1952년 3월 29일 - 1953년 6월 30일
후 임
 손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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