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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申鉉俊, 1915년 10월 ~ 2007년 10월 15일[1])은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일제 강점기만주군 장교였으며, 1949년부터 1953년까지 대한민국 해병대의 초대사령관을 지냈다.

경상북도 금릉군(현 김천시) 출신이다. 부모를 따라 일찍 만주로 이주하여 하얼빈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이 만주에 세운 봉천군관학교1936년 4월 입학하였다. 졸업한 후에는 만주군 대위로 근무했으며, 이때 박정희보다 상관으로 같은 부대에 있었다.

광복 후 잠시 광복군에 편입되었다가 귀국하여 1946년 조선해안경비대에 입대한 뒤 해군 중위로 임관하였다. 같은 해 인천기지사령관을 거쳐 1948년에는 진해특설기지 참모장에 임명되었으며, 1949년 4월 15일에 약 380명의 병역으로 해병대가 창설될 때 초대사령관을 맡았다. 당시 계급은 중령이었다. 신현준은 박정희를 비롯하여, 정일권, 백선엽, 이한림, 김석범, 원용덕, 김창룡 등과 함께 국군 내의 대표적인 만주군 인맥이었다[2].

한국 전쟁인천 상륙 작전과 도솔산 전투 등에서 해병대가 전과를 올리는데 공을 세웠고, 1953년 해병대 사령관 임기를 마친 뒤 새로 창설된 해병대 제1여단(현 해병대 1사단)의 초대 여단장을 맡았다.

국방부 차관보를 거친 뒤 1961년 해병 중장으로 예편하였으며, 이후 초대 모로코 대사와 초대 바티칸 대사를 지냈다. 제5대 세계반공연맹 사무총장도 역임했다.

만주군 장교 근무 경력으로 인해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중 군부문에 포함되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의 박정희의 행적을 둘러싼 논란 중 박정희가 비밀리에 광복군 활동을 했다는 설이 있으나, 박정희와 함께 근무했던 신현준이 광복군의 존재 자체를 광복 후 베이징으로 이동할 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증언한 것이 이러한 주장에 대한 중요한 반박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3].

같이 보기[]

참고자료[]

주석[]

  1. “부고/ 초대 해병대사령관 신현준씨 별세”. 경향신문. 2007년 10월 18일에 확인함. 
  2. “일제괴뢰 만주국서 끈끈한 '군맥' 다져 - 해방후 군부장악.. 5.16때 정치 전면에”. 세계일보. 2007년 10월 18일에 확인함. 
  3. 한홍구.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기회주의 청년 박정희! - 만주군관학교-광복군-남로당-숙군 협조, 양지만을 좇은 그의 끝없는 변신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겨레21. 2007년 10월 18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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