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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李富榮, 1942년 9월 26일 - )은 서울 출신의 정치인이다. 3선의원을 지냈으며, 지난 17대 총선에서 낙선하였다.

약력[]

  • 1961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 1968년 동아일보 기자 (~ 1975년)
  • 1969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 졸업
  • 1975년 자유언론운동 관련 복역
  • 1979년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 대통령 반대로 복역
  • 1984년 민중민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상임위원장ㆍ사무처장
  • 1986년 5ㆍ3인천사건 관련 복역
  • 1988년 광주학살진상규명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
  • 1988년 전두환 대통령 구속수사요구 관련 복역
  •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
  • 1992년 민주당 소속, 제 14대 국회의원 (서울 강동갑)
  • 1995년 민주당 부총재
  • 1995년 민주당 최고워원
  • 1996년 민주당 소속, 제 15대 국회의원 (서울 강동갑)
  • 1997년 11월 24일 - 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함께 한나라당으로 신설합당하여 한나라당 소속이 됨.
  • 1999년 한나라당 원내총무
  • 2000년 한나라당 소속, 제 16대 국회의원 (서울 강동갑)
  • 2003년 무소속으로 16대 국회의원(서울강동갑)
  • 2003년 국민통합신당 추진위원장
  • 2004년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 2004년 8월 - 열린우리당 의장
  • 2005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현재)

제도권 정치 입문 후[]

14대 총선 때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강동갑에서 당선되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시에 북한에 조문을 보내야 된다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질의하여 보수 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김대중의 정치 복귀로 민주당이 분당될 때 민주당에 잔류하였다. 1997년 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이 되자, 3김 청산을 명분으로 한나라당에 입당, 이회창을 도와 김대중 비난에 앞장섰다. 이후 한나라당에서 원내총무와 부총재를 지내면서 대여공격수로서 강경론을 이끌었다.

2002년 대선 때는 민주당과 노무현을 강력히 비난하는 등 이회창의 선거운동에 앞장섰지만, 이회창이 낙선하자 노무현이 이끄는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2004년 탄핵의 광풍 속에서도 17대 총선에서 낙선하였다. 그 해 8월 신기남 의장이 부친의 친일경력의혹으로 사퇴하자, 열린우리당 의장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등 4대개혁입법을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의장직에서 사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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