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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린(李鍾麟, 일본어: 瑞原鍾麟, 1883년 2월 11일 ~ ?)은 천도교 지도자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었다. 초대,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호는 황산(凰山)이다. 황산 이종린은 한말의 일간지 대한민보(大韓民報)의 주필을 거쳐 삼일운동 때는 박인호, 이종일, 김홍규, 윤익선과 함께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을 발행하여 삼일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주력하다가 옥고를 당하는 등 항일언론 활동을 하였고, 하와이 만국기자대회에 가입하고 기자단체인 무명회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황산 이종린은 개화기 문인으로서도 문학사(文學史) 상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 문장수사론(文章修辭論)인〈文章體法〉과 한문희곡인〈滿江紅〉을 비롯하여 수편의 장편소설이 있다. 특히 황산은 ‘표제(標題) 단편소설’의 효시인〈모란봉〉을 비롯한 5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개화기 소설가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한 〈중성〉〈산업계〉〈실생활〉등의 잡지를 발간 운영하였고 각종 민족운동에 참여하여 조선물산장려회이사장, 신간회 본부 선전부장과 신간회 경성지회위원장, 조선기근구제위원장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1910년 천도교에 입교한 후 오랫동안 교단의 중책을 역임하였으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교단의 최고책임자인 천도교 대종사장과 교령직에 있으면서 교단의 영욕을 대변해야 하는 안타까운 지경에 처하기도 하였고, 이로 인하여 해방 이후에는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재판 결과 무혐의 판결을 받은 이후 제헌국회에서 헌법기초위원으로 정부 수립에 공헌하기도 하였다.

이종린은 한국전쟁때는 피난을 하지 못하고 조선인민군서울을 점령했을 때 체포되었다가 서울이 수복되던 날 납북되던 중에 사망하였다.

안창호, 여운형과 더불어 세칭 당대의 ‘3대 웅변가’로 일컬어졌었다.

기타 약력[]

  • 성균관박사
  • 대한협회회보편집원
  • 천도교월보사장
  • 민중대회위원장
  • 민우회상무이사
  • 신흥조선사장
  • 천도교중앙위원회대표
  • 천도교상임선도사.천도교장로

저서[]

  • 이종린저, 이동초 편저: 《황산 이종린 식사집-연사수지》(모시는사람들, 2006년)

참고자료[]

전 임
'
제헌 국회의원(서산군 갑)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무소속
(서산군 을)김동준
후 임
(서산군 갑)이종린
(서산군 을)안만복
전 임
(서산군 갑)이종린
(서산군 을)김동준
제2대 국회의원(서산군 갑)
1950년 5월 31일 - 1950년
일민구락부
(서산군 을)안만복
후 임
(서산군 갑)김제능
(서산군 을)유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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