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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李鐘贊, 1916년 3월 10일 ~ 1983년 2월 10일)은 일본군 출신의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이다.

대한제국의 외무대신, 법부대신을 지냈고 한일 병합 조약 체결 과정에서 일본에 협력한 이하영의 손자로, 서울 출생이다.

재산가인 이하영의 장손이었기에 여유있는 가정에서 자랐고, 서울에 근무하는 고위급 일본인 자제들을 위해 세워진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 경성중학을 졸업했다. 1933년 경성중학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유학,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제49기)하고 1937년 임관하여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 때는 최전방에서 야전사령관으로 근무했다.

1945년 귀국하여 1949년 대한민국 육군의 대령으로 임관했다. 당시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았으나, 친일파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일본 군인이 되었다는 것 외에는 아직 젊은 나이였기에 별다른 특이점은 찾을 수가 없어 특별한 처분을 받지는 않았다.

1950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어 한국 전쟁을 맞았고, 제3사단장, 보병학교 교장을 거쳐 1951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임명 한달후 부산 정치 파동 때 대통령 이승만의 군부대 동원 명령을 거부하여 곧바로 해임되었다. 이때의 기개 때문에 이종찬에게는 '참군인'이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녔다.

이후 미국 유학을 거쳐 육군대학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잠시 지낸데 이어, 주 이탈리아 대사로 6년간 근무했다. 1976년 유정회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에 일본군 영관급 장교 경력 때문에 선정되었다. 그는 광복 직전인 1945년 4월 사망한 아버지 이규원자작 작위는 습작하지 않았다.

이승만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유명해진데다 군 후배들에게 신망이 높았던 이종찬은, 과거사 정리는 신중해야 하며 친일파의 후손이거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에 복무했다 하여 일괄적으로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펼칠 때 인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1].

같이 보기[]

참고자료[]

각주[]

  1. 이종찬. “시론/ 과거사 정리 때 경계할 일”. 중앙일보. 2007년 10월 20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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