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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랑(李海浪, 1916년 7월 22일 ~ 1989년 4월 8일)은 한국의 연극인이며 정치인이다. 본명은 이해량(李海良)이다.

서울 출생이다. 철종의 먼 친척으로 할아버지는 왕실에서 벼슬을 했고, 아버지는 세브란스의전 부속병원의 의사인 넉넉한 가정에서 자랐다.

휘문고보일본니혼 대학을 졸업했다. 니혼 대학 예술학과 재학 중에 도쿄학생예술좌에 가입하여 학생 연극으로 연극계에 데뷔하였다. 귀국한 뒤 극연좌(극예술연구회의 후신), 고협, 현대극장에서 활동했다. 이 무렵 좋은 학벌을 갖춘 아들이 연극 배우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다시피하며 고초를 겪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광복후 현대극장 대표였던 유치진이 친일 의혹으로 활동이 뜸한 사이 1945년 극단 전선(全線)을 창립하고, 1946년에는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협회(당시 극예술회) 창립에 참가하며 우익 연극인들을 이끄는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배우로는 목소리가 무대 연기에 적합하지 못한 편이라 크게 빛을 보지 못했으나, 1950년 국립극장이 개관하자 극예술협회를 모태로 창단한 국립극장 전속극단 신협의 창립인과 대표를 맡아 이때부터 연출을 겸업하면서 능력을 인정 받았다.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1957년 국립극장 극장장, 1967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회장을 맡으며 대한민국 연극계와 문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1970년대에는 국회로 진출하여 제8대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 제9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되었다.

연출작으로 외국 희곡을 무대에 올린〈천사여 고향을 보라〉, 〈햄릿〉, 〈들오리〉, 〈황금연못〉,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등 100여 편이 있으며, 저서로 《또 하나의 커튼 뒤의 인생》(1985), 《이해랑 연출교정》(1986), 《허상과 진실》(199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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