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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신(任永信, 1899년 11월 20일 금산 - 1977년 2월 17일 서울)은 한국의 교육자 및 정치인이다.

성장 및 학력[]

호는 이승만의 이름에서 따온 승당(承堂)이다. 기독교 신앙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으며, 1909년 금산의 심광학교(心光學校), 1914년1918년 전주의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일본 히로시마기독여자전문학교(廣島基督女子專門學校), 1925년~1930년 미국 남캘리포니아주립대학을 거쳐 1931년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57년 미국 남캘리포니아주립대학, 1962년 롱아일랜드대학, 1971년 일본대학(日本大學) 등에서 명예학위를 받았다.

사회 및 교육 활동[]

1919년의 전주만세사건(3·1운동)으로 잡혔다가 1919년 6월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상해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18년 천안 양대학교(良垈學校), 1921년1922년 공주 영명여학교(永明女學校)와 이화학당(梨花學堂)교사를 지내고, 1932년 4월 중앙보육학원을 설립하여 교장이 되었으며1933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 총무를 지냈고 1941년 7월 경성중앙유치원을 설립하였다.1945년 10월 중앙여자전문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이 되었으며, 1946년 9월 중앙여자대학을 설립, 학장에 취임했다. 1948년 9월 중앙대학으로의 개편과 학장 취임, 1953년 2월~1961년1963년~1971년 중앙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1961년 11월 중앙문화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1961년 이후에는 대한여자청년단 단장을 지냈다. 1961년~1974년 한국부인회 회장, 1965년~1972년 대한교육연합회 회장, 1966년 세계교직자연합회장, 1969년 재건국민운동중앙회 부회장을 지냈다.

정치 활동[]

1945년 10월 여자국민당을 창당하여 당수가 되었으며 1946년 9월 남조선 민주의원 의원을 지냈다. 1948년 8월 초대 상공부장관이 되었으나 1949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의 독직사건(瀆職事件)으로 기소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1949년 6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1949년~1950년 제헌의회 의원, 1950년 제2대 민의원, 국제연합(UN)총회 한국대표를 지냈다. 임영신은 장면 정권때 한일 국교 정상화가 시도되자, "친일분자들의 망동과 일본의 흉계를 규탄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해 가면서 결사반대의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임영신은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자 극찬을 보내면서 공화당에 참여했다. 한일협정 문제로 인한 국회의 파행에 대해선 오히려 야당을 규탄했다. [1]1963년 민주공화당 총재고문, 1971년 민주공화당 고문, 대한교원공제회 초대 이사장, 1972년 중앙문화학원 이사장, 1972년1976년 국민의회 대의원 및 운영위원을 지냈다.


언론 활동[]

1950년 2월 상공일보사(商工日報社)사장, 1952년 여성계사(女性界社)사장 등 언론계에도 관여하였다.

사후[]

유해는 중앙대학교 교정에 묻혔다.

저서[]

석사학위논문으로 〈한국불교도들의 기독교신앙으로 전향하는 길〉(1931년), 저서로 〈내가 한국을 위해서 분투했던 40년 My Forty Years Fight for Korea〉이 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청조근정훈장 및 미국 아이젠하워 상을 수상했다.

가족 관계[]

  • 아버지: 임구환(任九桓)
  • 어머니: 김경순(金敬順)
  • 남편: 한순교(1939년 미국에서 결혼하였으나 1940년 임영신 혼자 한국으로 돌아옴)
  • 임영신은 12남매 중 둘째 딸이다.

참고자료[]

전 임
(안동군 갑)정현모[2]
제헌 국회의원(안동군 을)
1949년 [3] - 1950년 5월 31일
대한여자국민당
(안동군 갑)김익기
후 임
(안동군 갑)김시현
(안동군 을)김익기
전 임
정해준
제2대 국회의원(금산군)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여자국민당
후 임
유진산

주석[]

  1. 임영신은 장면 정권 때~: 박태균, 〈임영신:이승만에 대한 애정과 반공의 신념〉,반민족문제연구소,《청산하지 못한 역사 1: 한국현대사를 움직인 친일파 60》(청년사, 1994), 122~124쪽.
  2. 1948년 10월 18일 경상북도 도지사 취임으로 사직
  3. 1949년 보궐선거에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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