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위키아
Advertisement

장면(張勉, 1899년 8월 28일 ~ 1966년 6월 4일)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과 부통령, 국무총리 등을 지냈던 정치인이다. 인천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운석(雲石)이다. 1948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3차 유엔 총회에 대표단 수석 대표로 파견되었다. 자유당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던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신익희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하여 신익희가 선거 직전 급사한 가운데, 이승만의 러닝메이트였던 이기붕을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부통령 재직 중 그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다. 1960년 3월 15일에 있었던 정·부통령 선거에서 조병옥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극심한 부정 선거로 당선되지 못 했다. 3·15 부정선거마산 3·15 의거의 촉발제가 되었고, 이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었다. 4·19 혁명 이후 의원내각제로 권력 구조가 바뀐 제2공화국에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국무총리를 지냈다.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 정변으로 제2공화국이 붕괴하면서 실각하여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가족 관계[]

  • 아버지: 장기빈(張箕彬), 어머니: 황루시아
  • 동생: 장발(張勃, 1901년 4월 3일 ~ 2001년 4월 8일, 서양화가, 가톨릭 신부)
  • 동생: 장극(張剋, 1913년 4월 8일 ~ , 교수)
  • 아들: 장익 (張益, 1933년 11월 20일~ , 가톨릭 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전 임
초대
제헌 국회의원(종로구 을)
1948년 5월 31일 ~ 1949년 2월[1]
무소속
종로구 갑: 이윤영
후 임
(종로구 갑)박순천
(종로구 을 보궐선거)이인
전 임
초대
제1대 주미국 대사
1949년 2월 ~ 1951년 2월
후 임
 양유찬 
전 임
신성모
제2대 국무총리
1950년 11월 23일 ~ 1952년 4월 23일
후 임
 허정 
전 임
함태영
제4대 대한민국의 부통령
1956년 5월 15일 ~ 1960년 3월 14일
후 임
 폐지 
전 임
허정
제7대 국무총리
1960년 8월 19일 ~ 1961년 5월 17일
후 임
 장도영 
  1. 1949년 2월에 주미국 대사로 부임하고, 1949년 3월에 종로구 을 선거구에 대한 보궐선거가 치러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1949년 2월 경에 사임한 것으로 추정된다.

vi:Trương Miễn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