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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 살해사건(鄭仁淑 殺害事件)은 제3공화국 당시의 의문사이다.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부근의 강변3로에 멈취 서 있는 검정색 코로나 승용차에서 권총에 넓적다리를 관통당해 신음하고 있는 한 사내와,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아 이미 숨진 한 젊은 여인이 발견되었다. 부상당한 사내는 정종욱(당시 34세), 숨진 여인은 정인숙(당시 26세)으로 두 사람은 남매 관계로 밝혀졌다.

나중에 정인숙의 집에서 발견된 정인숙의 소지품에선 정관계 고위층의 명함 26장이 포함된 33장의 명함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해졌고 언론 보도가 수사를 대신하게 되었다. 언론은 정인숙에게 숨겨진 아들(정일성)이 하나 있고, 정인숙이 당시 정관계 고위층 전용이라 할 수 있는 고급 요정 '선운각'을 드나들었다는 걸 밝혀냈다.

1주일 후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오빠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종욱은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했으나, 정인숙이 듣지 않고 자신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누이동생을 죽이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1]

정인숙 살해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지만, 의혹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성급히 정결지으려는 수사 태도도 의심을 샀고 정종욱이 사용했다는 권총이 발견되지 않았고, 증거는 오직 정종욱의 자백뿐이라는 점이 의혹을 증폭시켰다. 정종욱에 대해선 '권세가들에게 희생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설이 떠돌았다. [2]

주석[]

  1. 1970년 3월~: 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테리〉《신동아》(1983.9.) 166~167쪽
  2. 윤재걸, 《청와대 밀명: 윤재걸 르포집》(한겨레, 1987년)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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