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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ung Ho Yong 1985-3-22.png

정호용, 1985년

정호용(鄭鎬容, 1932년 9월 10일 ~ )은, 대한민국군인, 정치인이다.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1955년 육군사관학교을 11기로 졸업했다. 동기생으로는 전두환, 노태우가 있으며, 그들과 함께 사조직 하나회를 구성하였다.

1974년 7공수여단장을 거쳐 1978년 대구주둔의 50사단장이 되었다. 박정희 암살 이후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 반란때는 대구에서 상경하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이후 거사에 성공한 신군부가 군 요직을 차지하면서 핵심요직인 특전사 사령관에 취임하였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특전사 소속 부대의 잔혹행위를 둘러싸고 훗날 책임론이 제기되지만, 본인은 당시 특전사 소속의 진압부대들은 당시 광주 상무대에 있던 전교사에 배속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당시 신군부는 공식적인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사조직 하나회의 인맥에 의한 명령을 내리는 일이 빈발했음을 고려해야 한다.

친구인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출세가도를 달려 대장까지 승진, 1983년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고, 2년후 예편후에는 내무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을 각각 역임하였다. 이후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정치인으로 변신,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대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제5공화국 유산청산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이 조금씩 알려짐에 따라 공직사퇴요구가 강하게 제기되어 결국 1990년 1월 8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이후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의 지역구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하지만 정치적 부담을 느낀 노태우 정부의 압력에 의해 후보직을 다시 사퇴하였다.

이후 1992년 다시 14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고 후에 3당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자당에 입당하지만 김영삼정부의 과거청산작업에 따라 1996년 다시 12·12반란과 5·18내란 혐의로 구속되어 유죄 확정, 다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김대중정부의 출범 이후 석방된 그는 별다른 활동 없이 지나다 2002년 종친인 정몽준의 대통령출마를 돕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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