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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공산주의 조선공산당1925년 4월 17일 창건된 정당이다. 1928년 일본의 탄압과 내부분열로 해산되었다가 1945년 9월 11일 재건되었다가 1948년 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과 합당하여 남조선로동당의 전신이 되었다.

조선의 사회주의운동은 1920년대 초부터 진보적인 조선인 유학생들이 일본유학기간동안 사회주의를 접하면서 점차 수면으로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사회주의10월혁명에 영향을 받은 몰락한 양반인텔리겐챠, 민족주의계열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공산당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엠엘파, 화요파, 서울파 등 파벌들의 난립으로 코민테른에서 서로 자기들이 조선공산당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심각한 진통을 겪다가, 1928년 조선총독부의 탄압에 의해 강제해산되었다.

북조선 학계는 1925년 조선공산당의 실패를 논하며 이러한 파벌들의 각축전이 "형식적, 행세식 공산주의자들"이 뿌린 "종파주의의 해독" 때문에 조선공산당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강력히 비판하였으며, 조선공산당의 실패는 이후 김일성이 "종파주의 척결"을 내세우며 조선로동당 내에서 분파들을 숙청하는 구실이 되었다.

조선공산당은 이후 1945년 9월 11일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소군정코민테른 즉, 국제공산당의 "1국 1당원칙"에 의거해 조선공산당을 승인하고 김일성에게 '북조선분국'을 세우도록 지시했다. 1945년 12월 17일에 열린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소련 점령군 사령부의 각본에 따라 김일성이 책임 비서로 선출되었다.

1946년 1월 3일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민족통일자주독립촉성 서울시민대회를 열었다. 원래 서울시민대회는 신탁통치 반대를 위한 대회였는데, 갑자기 찬탁으로 바뀐 채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였다. 이는 조선 공산당을 비롯한 좌익이 극단적인 폭력투쟁노선과 더불어 인민들에게 외면받는 원인이 되었다.[1]

실질적으로 조선공산당은 김일성의 빨치산파의 압력을 받고 있었으며, 빨치산파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북조선로동당으로 개칭하자 남조선에서도 조선공산당, 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과 합당하여 남조선로동당이 세워졌다.

북조선로동당과 남조선로동당은 1949년 6월 30일 조선로동당으로 이름을 바꿔 합쳐졌으나 실권은 소군정을 등에 업은 빨치산파에 남아 있었다. 박헌영을 지도자로 한 옛 남로당 인사들은 로동당 내에서 남로당파를 형성하였으나, 한국전쟁이후 모두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관련사항[]

  • 조선인민군

바깥 고리[]

각주[]

  1. 《우리역사의 수수께끼》/이덕일외 공저/김영사

sv:Koreas kommunistiska pa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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