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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만(趙容萬, 1909년 3월 10일 ~ 1995년 2월 6일)은 한국의 소설가, 번역문학가이며 영문학자이다. 아호는 아능(雅能).

생애[]

아버지가 영어 교사인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영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여 잡지 《동광》에 희곡 〈가보세〉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여 이후 희곡 작가와 소설가로 활동했다. 그는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주로 썼으며, 당시 유행하던 이념성과는 본래 거리를 두어 1933년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구인회에 참가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세브란스의전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매일신보》의 기자로 일했다.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극렬 친일 언론이었기에, 이 신문사에 1931년 학예부 기자로 입사하여 1945년 광복 무렵에는 학예부장 겸 논설위원을 지내고 있었을 정도로 오래 근무한 그는 친일파로 분류된다.

매일신보 기자를 지내면서 친일 문학인들이 결성한 조선문인협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태평양 전쟁을 지원하는 각종 기고 활동에 참여했다. 일본어로 쓴 희곡 《광산의 밤(일본어: 鑛山の夜)》(1944) 등을 발표하는 친일 창작 활동도 했다. 이 희곡이 실린 《국민문학》은 대표적인 친일 문학 잡지이며, 어린 나이에 항공병으로 지원하는 주인공을 온 가족이 후원해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광복후에는 영자 신문인 《코리아 타임스》의 주필과 《서울신문》 논설 위원을 지냈으며, 한국 전쟁 종전 무렵인 1953년부터 20년 동안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단의 원로로서 활동했다.

한국 전쟁 직전에 첫 창작집을 내기 위해 원고를 인쇄소에 맡겼으나 이 원고가 전쟁중 소실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사건과 함께 절친하던 구인회 시절의 동료들인 정지용, 박태원, 이태준이 전쟁 중 월북한 이후로는 창작 활동에 상당 기간 소극적이 되었고, 대신 근대 문학사의 유명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 자전적 소설인 《구인회 만들 무렵》등과 번역 작품들을 남겼다.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2005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에 선정되었다. 2002년까지 밝혀진 친일 작품 수는 소설 3편과 기타 기고문 5편의 총 8편이었다[1]. 2005년 고려대학교 교내 단체인 일제잔재청산위원회가 발표한 '고려대 100년 속의 일제잔재 1차 인물' 10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2].

참고자료[]

  •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909쪽쪽. ISBN 8952104617. 

주석[]

  1. 김재용, 친일문학 작품목록 《실천문학》 (2002년 가을호)
  2. 《한겨레신문》 (2005.3.28) 고대 총학 ‘친일행적’ 10명 발표

틀:구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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