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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朱曜翰, 일본식 이름: 松村紘一, 1900년 10월 14일 ~ 1979년)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시인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호는 송아(頌兒)이며, 송아지와 목신(牧神)이라는 필명도 사용했다.

생애[]

평양에서 개신교 목사인 주공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설가 주요섭과 극작가 주영섭이 주요한의 친동생이다.

소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서 도일하여 일본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어로 쓴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입문하였고, 대표작으로 꼽히는 〈불놀이〉(1919)도 이 시기에 김동인, 전영택 등과 함께 발간한 동인지 《창조》 창간호에 발표했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한 뒤 《독립신문》 기자가 되었다.

상하이의 호강대학을 졸업하고 1925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에서 근무했다. 시집 《아름다운 새벽》(1924), 《3인 시가집》(1929), 《봉사꽃》(1930)을 간행한 뒤 1930년대부터는 화신산업 취체역 등 기업 활동을 하면서 시작이 뜸해졌고, 광복 후에는 문단 활동을 접고 기업인, 언론인, 정치인으로만 활동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지식인들이 대거 체포되었을 때 주요한도 검거되었고, 이듬해 이광수, 전영택, 현제명, 홍난파 등과 함께 전향하였다. 조선문인보국회, 조선임전보국단, 언론보국회 등 여러 친일 단체에 가담해 징병제를 선전하는 등 태평양 전쟁 수행에 적극 협력했다. 창씨개명한 이름도 일본의 팔굉일우(八紘一宇) 이념에서 따온 것이다.

광복 후 흥사단에 관계하며 대한무역협회 회장(1948)을 지냈고,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4·19 혁명으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제2공화국 내각에 부흥부 장관, 상공부 장관으로 입각했으며, 5·16 군사정변으로 장면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대한일보》 사장과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평가[]

〈불놀이〉는 한국 근대 자유시의 효시로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작품이며, 주요한은 김억과 함께 초기 시단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낭만적인 찬송가 작사도 하여 한국교회 음악발전에 공헌하였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어 있다.와카 형식으로 쓴 일본어 시집 《손에 손을(일본어: 手に手を)》(1943) 등 총 43편의 친일 작품명이 공개[1]되어,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선정된 문인 가운데 이광수 다음으로 편수가 많았다.

197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받았다[2].

같이 보기[]

참고자료[]

  •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929~930쪽쪽. ISBN 8952104617. 
  • 반민족문제연구소. 〈주요한 : 대동아공영의 꿈 읊조린 어릿광대 (김윤태)〉. 《친일파 99인 (3)》. 서울: 돌베개. ISBN 8971990139. 

주석[]

전 임
(중구 갑)윤치영
(중구 을)정일형
제4대 민의원(중구 갑)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후 임
 (중구 갑)주요한
(중구 을)정일형
 
전 임
(중구 갑)주요한
(중구 을)정일형
제5대 민의원(중구 갑)
1960년 7월 29일 - 1961년 5월 16일
후 임
 (중구)정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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