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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천(池靑天, 1888년 2월 15일 종로 ~ 1957년 1월 15일)은 항일 독립운동가였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었다. 호는 백산(白山), 본명은 대형(大亨), 일명 이청천(李靑天)이라 불렸다.

구한말에 무관학교에 입교했다. 2학년때 1,2학년생 40여명과 일본의 동경육군중앙유년학교로 유학을 갔다. 이때까지는 본명인 지대형을 사용했다. 유학 도중 한일합방이 되자, 일본육군사관학교 보병과로 편입되었고, 1914년에 26기생으로 졸업하였다. 중위로 진급한 후 1919년에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 교성대장이 되어 독립군 간부양성에 진력하였다. 이때 망명하면서 일본군의 병서(일종의 전술교범)와 군용지도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유일하게 정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지청천의 가치는 독립군에게 아주 중요했을 것이다.

1920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만주군정부, 서로군정서 간부에 취임, 청산리 대첩 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보복을 피하여 신흥무관학교를 폐교하고 병력을 간도로 이끌었다.

1921년 6월, 자유시 참변때 소련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지만, 북만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고, 그곳에서 고려혁명군을 결성했다. 서일, 김좌진 등과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다. 이청천이라는 이름은 이때 사용했다. 지청천은 이후에도 여러 항일무장투쟁단체 결성에 관여하였다. 양기탁, 오동진 등과 정의부를 조직했으며, 김좌진이 저격당한 후인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고, 별도로 한국독립군을 만들기도 하였다. 1940년중일전쟁의 여파로 충칭(重慶)으로 옮긴 임시정부의 광복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항일전을 수행하다가 1945년 광복 후 귀국, 1947년 4월 대동청년단을 창설하였다.

정부수립 후 초대 무임소장관, 민주국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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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군
  • 광복군
  • 대한민국임시정부

참고자료[]

전 임
초대
제헌 국회의원(성동구)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무소속
후 임
지청천(성동구 갑)
임흥순(성동구 을)
전 임
지청천
제2대 국회의원(성동구 갑)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민주국민당
임흥순(성동구 을)
후 임
임흥순(성동구 갑),
김재황(성동구 을)

틀:1992년-이 달의 독립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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