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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車智澈, 1934년 11월 16일 ~1979년 10월 26일)은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미국에서 포트실 포병학교웨스트포인트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1960년에 귀국하여 군수사령관 박정희 소장을 처음 만났고, 이어 1961년에는 대위로 진급하여 박정희와 함께 5·16 군사정변을 함께하기도 했다.

군사정변 성공 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경호차장을 맡았으며,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이 되어 국회에 진출했다. 1964년에 국민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1965년에는 정치학 박사학위를 땄으며, 이어 계속 공화당 의원직을 맡았다.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차지철은 유정회 의원이 되었으며, 2년 뒤인 1974년에는 영부인 육영수국립극장에서 문세광에게 저격당해 죽자, 경질된 박종규를 대신하여, 제3대 대통령 경호실장이 되었다.

그러나 차지철은 경호실장으로서 월권행위를 많이 부렸으며, 심지어 경호실이 '대한민국 최강의 군대'라고 불렸다. 하지만, 박정희는 그를 계속 총애했으며, 차지철은 이 후광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게 되어, 그 힘은 중앙정보부김재규를 훨씬 능가했다.

이에 김재규는 상당히 차지철에게 원한이 많았으며, 결국 차지철은 1979년 10월 26일궁정동 안가 연회장에서 박정희와 같이 김재규에게 저격당해(10·26 사건) 팔과 배를 맞았으며,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을 때, 궁정동 안가 경비원 김태원이 확인 사살을 해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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