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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덕(蔡秉德, 1914년 ~ 1950년)은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大島秉徳"이다.

한국전쟁 이전의 생애[]

채관수(蔡觀洙)의 둘째 아들이다. 평안남도 평양 출생. 평양 종로 공립 보통학교와 평양 공립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37년 6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49기로 졸업하고 일본군 육군소위로 임관되었다. 그뒤 일본군 포공학교를 졸업, 병기장교가 되었다. 해방 후 장사를 하다가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가 1946년 1월 15일 졸업 후 바로 정위(正尉: 현재의 대위)로 임관, 같은 날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 제1연대장을 맡았다. [1] 또한 1 보급 부대장·병기 부대 사령관·후방 부대 사령관·제 4 여단장 등을 지냈다. 1948년 8월 통위부 참모총장, 1948년 8월 16일 국방부 참모총장에 임명되었고, 1948년 12월 육군준장으로 승진하였다. 1949년 2월에는 육군 소장으로 승진하였다. 1949년 5월 국방부의 기구간소화로 종래의 육·해군을 통합지휘하던 국방부참모총장제가 폐지되고 국방부장관이 통할하게 됨에 따라 1949년 5월 9일 제2대 육군총참모장이 되었다. 총참모장 재직 중 전력 증강을 위한 부대 증설, 교육 강화를 위한 각종 군사학교의 신설, 북한 대남유격대의 토벌 작전 수행 등의 많은 업적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949년 10월 남북한간의 물자교역과정에서 발생한 남북교역사건 및 제1사단장 김석원과의 갈등으로 참모총장직에서 해임, 예편되었다가 1949년 12월 14일 국방부 병기 행정 본부장으로 복귀하였고 1950년 4월 말에 제4대 육군총참모장 겸 육해공군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2]

한국전쟁[]

그러나, 야전군 지휘 경험이 없는 병기 장교 출신으로서 참모총장으로서는 문제가 있었다. 취임 초기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의 남침 정보를 접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38선에서의 무력 침공 사건이 발생하거나 대남유격대가 준동할 때마다 비상 경계의 형식으로 대처하였고, 또한 그것으로 실효를 거두었다. 이에 정보국의 정보 분석과 북한 남침 경고를 무시하였다가 19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서울이 함락되는 등 패전을 거듭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 오후 국무회의에서 서울 사수를 공언하였고 명령만 있으면 나흘 안에 평양을 점령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3] 결국 한국전쟁 초기 패전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1950년 6월 30일 육군참모총장에서 해임되 '경남 지구 편성군 사령관'이란 직책으로 좌천되었다. 맥아더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도쿄에서 날아와 잠시 이승만을 만났을 때 채병덕의 해임을 건의했다고 한다. 사태 수습책을 묻는 맥아더의 질문에 채병덕이 200만 남한 청년들을 동원해 훈련시켜 침략을 격퇴하겠다고 답하자, 맥아더는 그 자리에선 칭찬한 뒤 이승만에겐 갈아치우라고 말했다.[4] 1950년 7월 23일 국방부장관 신성모는 채병덕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귀하는 서울을 잃고 중대한 패전을 당했다. 책임은 중하고 크다. 그런데 지금 적은 전남에서 경남으로 지향하고 있다. 이 적을 막지 않으면 전 전선이 붕괴될 것이다. 귀하는 패주 중인 소재 부대를 지휘해서 적을 격퇴하라. 귀하는 선두에 서서 독전할 필요가 있다." [5] 이 명령으로 채병덕은 남해안을 돌아 공격하여오는 적을 저지하기 위해 출전하였다가 7월 27일 하동 고개에서 인민군 6사단의 매복작전에 걸려들어 전사했다.(하동전투) 훗날 채병덕 살해 음모가 제기되기도 했다.[6]

사후[]

정부는 1계급 특진시켜 중장을 추서하였다. 그러나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에 선정되었다.

참고자료[]

  • 한국전쟁사 1(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68)
  • 육군참모총장 연대지 1(육군본부, 1970)
  • 悲劇의 軍人들(李起東, 一潮閣, 1982)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전 임
이응준
제2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1949년 5월 9일 ~ 1949년 9월 30일
후 임
 신태영 

주석[]

  1. 1946년 1월~제1연대장을 맡았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 196~197쪽.
  2. 정해구,〈채병덕: 일본 육사 출신의 대한민국 참모총장〉,반민족문제연구소,《청산하지 못한 역사1: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친일파 60》(청년사, 1994),236쪽.
  3. 1950년 6월 26일: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50년대편 1권〉49쪽.
  4. 1950년 6월 30일~: 조지프 굴든, 김쾌상 옮김,《한국전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일월서각, 1982),112쪽.
  5. 1950년 7월 23일~: 정해구,〈채병덕: 일본 육사 출신의 대한민국 참모총장〉,반민족문제연구소,《청산하지 못한 역사1: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친일파 60》(청년사, 1994),238쪽.
  6. 7월 27일~: 강준만,《한국현대사산책》 〈1950년대편 1권〉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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