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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orea-Seoul-Cheongwadae-Blue.House-Bukhansan-01.jpg

항공에서 바라본 청와대의 모습

청와대(靑瓦臺, 영어 이름 Office of the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혹은 The Blue House)는 대한민국 대통령과 관계된 행정기관을 말하며 동시에 집무공간인 대통령 관저를 말한다. 관저는 대통령 가족이 주거하는 상춘재, 경호 부속기구인 경호실, 대언론창구인 춘추관을 포함한다.

역사[]

서울 경복궁 뒤, 북악산 자락에 있다. 오래전부터 명당으로 알려져 있던 곳으로 고려 숙종 9년(1104년)에 왕실의 이궁이 자리잡았던 곳이다. 조선시대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이 곳은 경복궁의 후원이 되면서 왕궁을 지키기 위한 수궁과, 경무대, 융문당, 경농재, 벽화실, 오운각 등 총 232간의 건물과 임금이 친히 논을 일궈 농사가 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우던 8배미의 논이 있었다. 과거 시험이나 무술 대회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1910년부터 경복궁을 조선총독부의 청사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후원에 있던 건물들을 다 허물고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총독관사를 새로 지어 7, 8, 9대 총독이 사용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 집권시에는 경무대(景武臺)로 불리다가, 4·19 혁명 이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1990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2004년 행정수도 건설논의 당시 이전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였으나, 헌법재판소위헌판결직후 일체의 논의는 중단되었다.

건물[]

  • 본관 -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건물입니다.

이 건 물은 1989년 22명의 전문가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많은 의견을 수 렴한뒤 1991년 9월 4일신축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정부와 국가를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 에 전통 목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내부구조는 현대적인 감각과 시설을 갖추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2층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단층의 별채를 배치했으며 우리나라 건축양식 중 가장 격조높고 아름답다는 팔작지붕을 올리고 한식 청기와를 이었습니다. 약 15만장이 나 되는 청기와는 일반 도자기를 굽듯이 한 개 한 개 구워 내어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다고 합니다. 이 본관 건물 신축으로 외국의 국가원수나 외교사절이 방문했을 때 우리전통의 건축양식을 통해 우리문화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물안으로 들어가면 1층에는 영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무궁화실, 인왕실이 1층 별채에는 충무실, 세종실이 있으며,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백악실, 집현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앞의 넓은 잔디마당은 국빈환영행사와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복식을 입은 전통의장대의 사열등이 행해지는 곳입니다.

  • 영빈관 - 영빈관은 대규모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행사를 개최하는 건물 로써 1978년 1월에 착공하여 그해 12월에 준공이 되었습니다.

이 곳 영빈관은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건물입니다. 특히 전면에 있는 4개의 돌기둥은 2층까지 뻗어 있는 높이가 13m에 둘레가 3m인 기둥입니다. 내부는 무궁화, 월계수, 태극무늬가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영빈관은 말 그대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입니다. 외국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를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행사장으로 이용되거나 100명이상 대규모 회의및 연회를 위한 장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2층에도 1층과 똑같은 홀이 있는데 1층은 접견장으로, 2층은 만찬장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 대통령관저 -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껴 1990년 10월 25일 완공되었다.
  • 수궁터 - 지금 청와대가 위치한 지역은 옛날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吉地)로 알려져 이곳에는 890년 전인 고려시대에 남경의 이궁이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이 곳은 경복궁의 후원이 되었다. 그 후 고종 5년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융문당, 융무당, 오운각 등의 건물이 들어서고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곳은 또한 농사가 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우기 위해, 왕이 손수 가꾸던 8배미의 논이 있던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1910년부터 경복궁을 조선총독부의 청사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후원에 있던 건물들을 다 허물고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했고, 총독관사를 새로 지어 7, 8, 9대 총독이 사용했다. 일본인들이 여기에 관사를 지은 것은 조선 왕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로막아 그 앞에 청사를 짓고 그 뒤편에는 총독관사를 지음으로써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 고 풍수지리학상 용맥을 끊어 민족정기를 말살하여 이 나라를 영원히 지배하고자 했다. 높은 곳에서 보면 총독관사건물은 大자의 모양을, 총독부 청사건물은 日자의 모양을, 서울시청건물은 本자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세 글자를 이으면 [大日本]이 되었다. 그후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이곳은 미 군정 사령부 하지 중장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경무대,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어 가며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던 구청와 대 건물은 1993년 11월 철거되었다. 1989년에 집무실과 관사를 분리하면서 구청와대 본관을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민족 정기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하였다. 철거 뒤 그 자리를 옛 모습대로 복구시킨 후,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들이 있었다하여 지금은 수궁터라 부르게 되었다.

  • 상춘재(常春齋)- 상춘재(常春齋)는 1983년 4월 준공된 전통적인 한식 가옥으로 외빈접견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원래 20여평 정도의 일본식 건물이 있었으며 1983년까지 만 해도 청와대 경내에는 전통 한옥식 건물이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외국에서 손님이 와도 우리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할 길이 없었던 것입 니다. 이에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하여 전통 한식가옥인 상춘재를 짓게 되었다. 현재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 녹지원 - 녹지원(綠芝園)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120여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원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농사를 장려하는 채소밭이 있었고 일제 총독관저가 들어서면서 가축사육장과 온실 등이 조성되었는데 1968년 에 약 1,000여평의 평지에 잔디를 심어 야외 행사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매년 봄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등 각종 다 채로운 행사가 펼쳐지고 있으며 1995년 5월 28일에는 인근 주민 약 3,000여명을 초청하여 KBS 열린 음악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또 주변에는 녹지원을 상징하는 소나무인 한국산 반송이 있는데 수령은 약 150여년에 이르며 높이는 16m이다.

  • 여민관 - 대통령비서실은 여민1관, 2관, 3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민 1관은 2004년에 완공되였으며, 2관(구 신관) 및 3관(구 동별관)은 각각 1969년, 1972년에 건립되었다. 여민 1관에는 대통령 간이집무실 등의 주요시설이 위치해 있으며 에너지 절약을 위해 외단열 시스템을 적용하여 건립 되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친환경적인 태양광 발전시설을 여민3관 건물 외벽에 설치하여 일부 전력을 자체 공급하고 있다.

※ 여민 : '대통령과 비서진들이 국민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곳' 이라는 의미에서 '여민고락(與民苦樂)'에서 따온 이름이다.
  • 춘추관(春秋館) - 춘추관(春秋館)은 1990년에 완공되었으며,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을 살렸다.

현재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기자들의 기사송고실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외 언론사 기자 300여명이 출입하는 청와대 프레스센터로서 1층은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자실과 자료실 겸 소브리핑룸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에는 대통령 기자회견과 각종 브리핑 등을 하는 브리핑룸이 있다.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춘추관·예문 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오늘날의 자유언론의 정신을 잘 상징한다는 뜻에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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