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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李明博, 1941년 12월 19일 - )은 현대건설 회장을 지낸 기업인 출신 정치인으로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한나라당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후보로 대통합민주신당정동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성명의 영문 이니셜을 딴 약칭인 'MB'라고 불리기도 한다.

생애[]

어린 시절[]

일본 오사카 시 히라노 구(平野區) 에서 4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고, 동지상고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중 기관지확장증으로 군대를 면제받았다.

현대건설 시절[]

1965년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12년만인 1977년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현대건설을 대기업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도 있고, 내실을 다지지 못해 현대건설의 법정관리를 초래했다는 의견도 있다.

한겨레21지는 2007년 7월 26일 제670호에서 이명박 후보의 현대건설 시절을 조사하여 비판하였다.[1]

정계 입문[]

14대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재산공개 직전에 아파트를 다른 사람 명의로 소유권 이전을 하는 등 불성실하게 재산공개를 하여 비난을 받았다. 15대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하여 이종찬, 노무현에게 승리함으로써 15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선거비용을 속였다는 것이 선거기획을 담당했던 김유찬의 폭로로 인해 밝혀지고, 뒤이어 김유찬을 해외로 도피시킨 사실까지 밝혀졌고 이후 유죄선고를 받았다. 이명박 후보는 당시 의원직을 상실하기 직전에 사퇴하였다.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복원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본인의 시장 재임시절 공사를 완공하기 위하여 복원을 지나치게 서둘렀으며, 복원과정에서 발견된 문화재들의 처리문제와, 자연상태로의 청계천 복원이 아닌, 상수도물을 사용하여야 하는 청계인공천으로의 공사등, 환경과 문화적인 고려가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계천의 개발로 인해 청계천을 기반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을 떠나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청계천 사업 과정에서 양윤재 서울시 행정부시장이 재개발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 구속되었다.

서울시의 버스 체계를 개편하였다. 버스의 번호와 색은 좀 더 체계적으로 바뀌었고, 환승 횟수와 상관없이 거리에 따라 요금이 매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개편으로 인해 버스회사들의 적자를 메우는데 수천억에 이르는 서울시의 예산이 쓰이게 되었으며, 요금도 오르게 되었다. 새로운 교통카드 시스템이 이명박 후보의 서울시장 취임 2주년에 맞추어 급하게 도입되느라 많은 오류와 혼란을 빚었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교통카드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사업자를 사전 내정했다는 의혹이 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치적을 늘리기 위해 국제금융센터 건립을 지나치게 서둘러 금융 그룹 AIG에게 지나친 특혜를 주었으며 그로인해 AIG가 1조원 가량의 차익을 남기게 해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2]

재직 당시 5조원이던 서울시의 부채를 2조원으로 줄였다고 했으나, 그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한나라당 경선 도중에 박근혜 후보 캠프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3]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원희룡, 홍준표 후보와 경선을 치루어,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2위 박근혜 후보를 2452표차로 누르고 선출 되었다.

비판[]

4강 외교 추진 및 불발[]

2007년 10월 중에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순방하고 지도자들을 만날 것이라고 발표하였지만, 모두 거의 무산되었다.[4]

이명박은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되었다며 면담 일정을 공개하였으나, 미국 백악곽은 이를 공식 부인하였다. 공식적인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추진했다는 비판이 있었으며, 사대주의 외교에 대한 논란도 대한민국 정가 및 언론계에 있었다. 한편, 오마이뉴스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부 전 장관과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5]

황제 테니스 사건[]

서울시장 재직 당시, 시 산하 체육기관 등의 후원으로 황금시간대에 테니스장을 독점하면서 공짜로 "접대 테니스"를 즐겼다는 의혹을 받았고,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사용료 600만원을 지불하였다.

자세한 것은 이명박 공짜 테니스 의혹 사건을 참조

위장 전입 의혹[]

경선 기간 도중, 이 전 시장이 여러 차례에 걸쳐 위장 전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1969년 이후 모두 24차례의 주소 이전 중에 1977년의 중구 남산동 이전, 1979년의 중구 필동 이전, 1981년의 중구 예장동 이전, 1984년의 서대문구 연희동 이전은 세 딸(리라초등학교)과 막내 아들(경기초등학교)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주소지 이전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부인 김윤옥씨가 이 전 시장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집으로 주소지를 옮긴 이유는 아들의 중학교 입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시장은 2007년 6월 16일 “알아봤더니 30년전 아이들초등학교 들어갈 때 그렇게 된 것 같다. 어떻든 저의 책임이니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으며, 부동산 투기 위혹은 모두 부정했다.[6] 한편,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고위공직자 후보 검증과정에서 위장 전입을 강하게 비판해왔고, 그 때문에 낙마한 사례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7]

이명박이 소속된 한나라당은 대한민국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국무총리 추천에 있어 국무총리 후보자(장상 등)의 위장 전입 문제의 도덕성 문제를 집중 공격하여 노무현 정권의 총리 지명을 여러번 무산시킨 전력이 있다.

뉴타운 의혹[]

BBK (옵셔널 벤처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1996년 국회의원 당선 후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중 국회위원직을 사퇴한 후 미국에서 체류하게 되었다. 이때 지인이었던 에리카 김(미국 한인 여성 변호사)의 남동생 김경준과 함께 2000년 한국에서 사이버 금융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동 회사의 펀드 운용 위조 보고서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시작된 후 동업 관계는 청산되었다. 사업 종료 시점에서 이명박 후보의 동업자인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라는 회사를 창설한 후 주가 조작을 통해 380억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후 미국으로 도피하였다. 김경준은 이 회사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이명박이라고 주장하나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이를 부인했다.

현재 미국에서 재판중인 김경준의 대한민국 송환을 희망한다고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2007년 10월 11일 영남일보와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주장하였으나 바로 전날 이명박 후보의 미국내 소송 대리인은 송환 연기신청을 한 것으로 밝혀져서 대통령 후보의 거짓말 여부에 대한 파문이 일었으며 한편 이명박 후보측의 김경준 한국 송환 연기 신청은 미국 법정에서 기각되었던 바 있다.

10월 20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은 재차 김경준의 한국내 처벌을 선거 운동 과정에서 주장하였으나, 그 전날인 10월 19일 이명박 후보는 미국내 소송 대리인을 통해 재차 김경준 한국 송환 연기 신청을 미국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가 연루된 형사 사건의 재판이 미국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최초이다.

경부 운하 공약[]

경제성, 식수 오염, 공사 비용, 공사 기간등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8] 한편, 이명박 후보는 경부 운하 공약을 공개 토론을 통해 검증하자고 했었으나, 2007대선시민연대가 공개토론을 제안하자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거부 의사를 밝혀 문제가 되고 있다.[9]

선거법 위반과 범인도피[]

1996년 4·11 총선 당시 '대한민국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14대 국회에 여당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들어온 그는 이로써 'CEO출신 정치신인'이라는 딱지를 떼게 됐다. 그러나 그해 5월11일 각 후보들의 선거비용 액수가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야 4당 후보중 신고 재산액(2억6000만원)이 가장 적었고 최하위 득표를 기록한 김을동 자민련 후보가 4명중 가장 많은 선거비용(9255만원)을 신고했기 때문이다. 2위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7271만원)였고, 이명박 신한국당 후보(7149만원)와 이종찬 국민회의 후보(6819만원)가 각각 그 뒤를 이었다. 당시 이명박은 262억원 가량의 재산을 가진 재력가였고, 그가 후보 중 가장 공세적인 선거운동을 전개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가 3∼4위 후보보다 적은 비용을 신고하자 뒷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특히 노무현 후보는 이명박의 신고액에 대해 "한 마디로 코미디"라며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총선 당시 이명박의 선거기획을 담당했던 김유찬이 넉 달 후인 9월10일 국민회의 당사에서 "이명박이 총선 당시 전화홍보 및 각종 행사비용 등으로 6억8000만원을 썼고, 이중 3800만원 가량의 영수증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검찰수사 결과, 당시 국회의원 6급 비서관이었던 김유찬은 이명박이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하자 5급 비서관으로 승진시켜 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에게 이명박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제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명박은 사건 초기부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고려대 후배로서 이명박의 '자문역'을 자임했던 홍준표 의원도 "후보 또는 회계책임자 등이 금품전달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당선무효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종로구의 법정선거비용이 9500만원이었기 때문에 김유찬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명박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을 게 분명했다. 한편으로, 공소시효 만료일(96년 10월10일)만 넘기면 이명박이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96년 10월 9일 이명박은 형법상 범인도피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97년 9월11일 1심에서 법정선거비용 초과지출 및 범인은닉 혐의에 대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유죄선고로 인해 국회의원 자격을 잃기 직전인, 이듬해 2월 21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명박은 98년 4월28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400만원, 김유찬의 해외도피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명박은 "서울고법의 항소심 선고는 법적 판결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판결로 도저히 승복할 수 없다"며 서울시장 경선 출마를 포기했다. [10]

공인으로써의 품격에 대한 비판[]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중 유영봉안소안에서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사진에 포착되어 구설수에 올랐다. [11]

서울시장 재직 시절 월드컵 한국 대표팀 히딩크 감독과의 공식 행사에 외국 축구팀 유니폼을 착용하고 슬리퍼를 신은 아들을 입장시켜 기념 사진 촬영을 하여 시장으로써의 공사분별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이명박 후보는 일정이 끝난 후에 촬영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사실이 아니었으며, 기념 촬영으로 인해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시간이 취소되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명박 후보가 소유한 양재동 건물에 유흥업소가 입주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12]

2007년 9월 선거운동중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안창호씨"를 존경한다고 표현하였다.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비판[]

연이은 말실수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과 철학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13]

아이가 불구일 경우에 낙태를 허용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는 발언이 문제가 되어 사과하였다.[14]

경선 승리 후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이야기하다가 “얼굴이 예쁜 여자는 이미 많은 남자들이… 그러나 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은 서비스도 좋고…”라고 이야기했다고 알려졌다.[15] 이 발언은 오마이뉴스한겨레를 제외한 다른 언론들이 거의 다루지 않았으며, 이러한 침묵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16] 이 발언이 알려져 여러 여성 단체들과 정치인들이 이명박 후보를 비판하였다. 한편, 이명박 후보측은 이 발언이 전후 맥락 없이 왜곡보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명박 후보는 답변서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취지였고 특정 직종을 암시하지 않았다고 해명하였다.[17] 그러나, 최초로 발언이 보도됐을 때 발언 자리에 함께 있던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이 그런 발언이 있었음을 사실상 시인했고, 이명박 후보의 측근들은 '선배의 얘기를 한 것'이라고 변명했으며,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성매매가 아니라 발마사지였다고 해명하는 등 엇갈린 해명으로 문제가 되었다.[18]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정우택 충북지사와 주고받은 농담이 문제가 되었다. 정우택 지사가 이명박 후보에게 “예전 관찰사였다면 관기라도 하나 넣어드렸을 텐데”라고 말하자 이명박 후보가 “어제 온 게 정 지사가 보낸 거 아니었냐?”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문제가 되었다.

국회가 합의한 ‘행정중심 복합도시’안을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다”고 발언하여 문제가 되었다.[19]

건강보험료 의혹[]

이명박 후보는 수백억의 자산을 가지고 있지만, 2000년에서 2002년 동안 월 1만5000∼2만3000원의 국민건강보험료만 냈다는 것이 알려져 건강보험료 납부를 회피하기 위해 편법으로 직장의료보험에 가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 한편, 국민연금의 경우에는 소득을 345만원 이상(최고등급)으로 신고하였지만 의료보험의 경우는 200만원 가량 적은 100만원 대로 소득을 신고하여 소득을 속였다는 의혹과, 11개월간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되었다.

프로필[]

파일:Seoul-Lee Myung Bak.jpg

청계천 복원 사업 공사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명박(가운데).

일반[]

  • 생년월일 1941년 12월 19일 [일본 오사카]

학력[]

  • 1960년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야간) 졸업
  • 1965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 1999년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객원연구원
  • 2004년 서강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 2005년 국립목포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경력[]

  • 1965년 현대건설 공채 입사
  • 1977년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 1988년 현대건설 회장
  • 1977년~1992년 현대건설, 인천제철 등 현대계열사 10개사 사장 및 회장
  • 1992년~1998년 제14, 15대 국회의원
  • 1992년~現 미국 아칸소주 명예대사(클린턴 전 대통령 주지사 시절 위촉)
  • 1999년~2002년 아·태 환경 NGO 한국본부 총재
  • 2000년~現 캄보디아 훈센 총리 경제고문
  • 2002년~2006년 제32대 서울특별시장(민선 3기)
  • 2006년~現 (사)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회장
  •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확정

저서[]

  • 1995년 신화는 없다
  • 2002년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 2005년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
  • 2007년 온몸으로 부딪쳐라, 어머니,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

상훈[]

  • 1984년 국민훈장 석류장
  • 1985년 금탑산업훈장
  • 1998년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조선일보)
  • 1999년 20세기한국을 빛낸 30대 기업인(전국경제인연합회, 매일경제)
  • 2005년 2005 세계의 인물 대상(영국 파이낸설 타임즈 그룹 fDi 매거진)

가족 관계[]

한나라당의 전 국회의원 이상득은 이명박의 친형이다.

둘러보기[]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제1공화국
(1948~1960)
이승만 (1948~1960)
제2공화국
(1960~1961)
윤보선 (1960~1962)
제3공화국
(1963~1972)
박정희 (1963~1972)
제4공화국
(1972~1981)
박정희 (1972~1979) · 최규하 (1979~1980) · 전두환 (1980~1981)
제5공화국
(1981~1988)
전두환 (1981~1988)
제6공화국
(1988~현재)
노태우 (1988~1993) · 김영삼 (1993~1998) · 김대중 (1998~2003) · 노무현 (2003~2008) · 이명박 (2008~2013) · 박근혜 (2013~2017) · 문재인 (2017~현재)


주석[]

  1. 믿습니까, 이명박의 ‘유능한 CEO’ 신화, 《한겨레21》, 2007년 7월 26일
  2. 국제금융센터, AIG는 계약때부터 매각 계획, 《KBS》, 2007년 8월 21일.
  3. 박근혜 캠프 "이명박, 서울시 부채 5조 더 늘려", 《오마이뉴스》, 2007년 7월 13일.
  4. 이명박 '4강 외교' 무산되나?, 《프레시안》, 2007년 9월 26일.
  5. "이명박, 작년에는 럼스펠드 면담 부탁했다", 《오마이뉴스》, 2007년 10월 4일.
  6. 李 "위장전입 자녀교육 때문..국민께 죄송", 《연합뉴스》, 2007년 6월 16일.
  7. 역대 낙마 사례, 《세계일보》, 2007년 6월 18일.
  8. 경부운하를 둘러싼 이명박의 7 대 거짓말, 심상정, 《오마이뉴스》, 2007년 5월 29일
  9. "이명박, 경부운하 검증 제안에 '문자' 답변", 《프레시안》, 2007년 9월 13일
  10. 끝까지 '범인도피' 부인한 이명박 - 96년 선거법 위반 사건의 진실은?, 《오마이뉴스》, 2007년 2월 16일.
  11. 이명박 서울시장 5·18묘지서 부적절한 파안대소, <<한겨레>>, 2005년 4월 24일.
  12. 박용현, 대선후보와 ‘섹시클럽’: 품격의 검증, 《한겨레》, 2007년 7월 17일.
  13. 이명박 후보의 한 달 - ② 끊이지 않았던 말실수 논란, 《내일신문》, 2007년 9월 20일.
  14. 이명박 "낙태 반대하지만 불구로 태어날 경우엔…", 《한국일보》, 2007년 5월 16일.
  15. 이명박 후보, 편집국장들에게 부적절 비유 - 얼굴 '예쁜 여자'보다 '미운 여자' 골라라?, 《오마이뉴스》, 2007년 9월 12일.
  16. 고태진 칼럼, 이명박 발언 들은 편집국장들, 왜 침묵하나, 《오마이뉴스》, 2007년 9월 13일.
  17. 이명박, '마사지걸' 파문에 "골고루 기회주자는 취지", 《프레시안》, 2007년 9월 18일.
  18. ‘이명박 마사지걸’ 해명 “농담→발마사지→기회균등 강조”, 《한겨레》, 2007년 9월 18일.
  19. 이명박 “군대 동원해…” 김현미 “쿠데타 수제자…”, 《한겨레》, 2005년 2월 25일.
  20. 수백억 자산, 건강보험료는 월 2만원대, 《오마이뉴스》, 2007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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