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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부터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또는 한일협정)이 타결되기까지 14년간 총 7차례에 걸쳐 있었던 대한민국과 일본간의 일련의 협정.

5.16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박정희가 1964년 3월부터 본격화한 한일회담 타결 움직임은 학생을 중심으로 한 극렬한 반대를 불러왔고 1964년 6월에 그 반대 시위가 절정에 이르러 6·3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회담의 경과[]

존 F. 케네디의 뒤를 이어 집권한 린든 존슨 행정부는 1964년 가을부터, 사실상 중단상태에 빠진 한일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건 아시아의 국제정세 변화 때문이었다. 1964년 1월 중국-프랑스의 국교수립, 8월 4일 미국북베트남 폭격(통킹 만 사건), 10월 16일 중국의 핵 실험 성공 등은 미국에게 한일 두 나라를 묶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1] 1965년 1월 9일 박정희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일회담을 올해 안으로 가부간 매듭짓겠다고 선언했다. 박정희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1월 18일 한일 본회담이 속개되었다. 그 직전인 1월 7일 일본 측 수석대표 다카스키 신이치(高杉晉一)가 외무성 기자클럽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가 조선에게 유리하였다는 망언을 하였으나 회담 타결에 급급한 대한민국은 이를 문제삼치 않았다. [2]

회담의 주요 인물[]

김동조, 김종필, 박정희

한일회담과 독도 영유권 문제[]

주석[]

  1. 존 F.케네디의~: 강준만,《한국현대사산책》(1960년편 3권) (2004년, 인물과사상사) 19쪽.
  2. 1965년 1월 9일~: 강준만,《한국현대사산책》(1960년편 3권) (2004년, 인물과사상사)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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