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태영(咸台永, 1873년 3월 25일 ~ 1964년 10월 24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이다. 아호는 송암(松岩).
전라북도 김제 출생이다. 법관양성소를 졸업하고 한성재판소에서 검사시보로 법조계 근무를 시작했다.
한일 합병 조약 체결 이후 판사직에서 물러나 있던 중, 1919년 3·1 운동에는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천도교와 연합하는 기획 과정부터 깊이 개입했으며, 주동자로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출옥 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장로교 목사로 일했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이승만의 지원으로 80세의 나이에 대한민국 제3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수여 받았다.
1983년 아웅산묘역 폭탄테러사건 때 사망한 함병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함태영의 막내 아들이다.
참고자료[]
- 민족정기선양센터, 독립유공자 공훈록 - 함태영
전 임 김성수 |
제3대 대한민국의 부통령 무소속 1952년 8월 15일 - 1956년 8월 14일 |
후 임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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