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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하백(許河伯)은 일제 강점기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여성계 인물로 조각가 김복진의 부인이다.

배화여고보 교사로 근무하다가 소설가 박화성의 소개로 카프 창립자이며 유명한 문예운동가인 김복진을 만나 결혼했다. 숙명여고보 교사를 지내던 1940년 남편 김복진이 사망했는데, 이후로 조선총독부의 시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여성계의 대표적인 친일 인사가 되었다.

1942년조광》 주최의 시국 좌담회에서 징병제 실시를 환영하며 이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고, 같은 해 〈총후부인의 각오〉라는 친일 논설을 《대동아》에 기고했다. 전시 체제를 맞아 친일 여성 인사를 총망라해 구성한 조선임전보국단 부녀대에도 참여했다.

광복 직후 좌우 합작의 여성 단체인 건국부녀동맹를 결성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전국부녀총동맹 부위원장을 맡으며 좌익 계열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이 되었다. 이후 월북하여 행방을 모른다[1]는 설과 한국 전쟁 초기에 조선인민군서울을 점령했다가 후퇴한 뒤 좌익 활동 경력 때문에 살해되었다[2]는 상반된 설이 있다. 전국부녀총동맹의 유영준(위원장), 정칠성(부위원장)은 모두 월북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에 선정되었다.

참고자료[]

주석[]

  1. 《여성신문》 (2004.9.30) 좌익 독립운동가 ‘여성’도 재평가돼야”
  2. 다도아트갤러리, 위의 글 중 "부인 허하백, 전쟁 상황에서 잡혀 좌익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타살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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