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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탈퇴 선언을 하는 황라열 회장

황라열(1977년 8월 13일~)은 제49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이다. 2006년 6월 12일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출범 이래 최초로 탄핵되었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당선과 학내 갈등[]

당선과정[]

황라열(서울대학교 종교학과 2000년도 학번)은 서프라이즈(Suprise) 선거운동본부의 정후보로 2006년 4월 제49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선거기간에 소위 운동권 세력에 대한 비판과 한총련 탈퇴, 아크로 집회 금지의 공약을 통해 반운동권의 성향을 보여주었다. 인디밴드 가수, 군고구마 장수, 모 기업 대표이사 등 그의 다양한 이력이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어필하였으며, 특히 자신이 내세운 공약을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졸업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을 하여 공약의 책임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황라열과 부후보 송동길을 제외하고는 선거운동원들이 한 명도 없었고 선거자금을 거의 쓰지 않았음에도 45.75%라는 비교적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단과대학 학생회장들과의 갈등[]

황라열 회장은 자신이 내건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내 단과대학 학생회장들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먼저 '아크로 집회 금지 공약'에서 양 측이 충돌하였다. 황라열 회장은, 중앙도서관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는 아크로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로 인한 도서관 이용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를 막겠다고 공약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아크로가 가지는 학생운동사에서 가지는 역사성과 집회의 자유를 근거로 내세우며 4·19 혁명 기념 행사를 아크로에서 치루려고 하는 단과대학 학생회장들과 충돌하였다. 결국 총학생회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선에서 일단 마무리되었다. 단대 학생회장들의 반대로 그의 공약이 이행되기 어려워지자, 그는 아크로 집회를 임시 중단하기 전까지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운영기구인 “총운영위원회”의 소집을 거부하겠다는 공언을 하였고 총운영위원회는 상당 기간 소집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게시판[1]스누라이프에서는 아크로 집회 여부를 두고 서울대학교 학생들 간의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특히 경찰력을 동원해서라도 집회를 막겠다는 그의 발언은 논란을 더욱 점화시켰다.

또한 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한 학생들에 대한 치료비 지급 여부로 인하여 갈등이 또다시 일어났다. 시위 중 부상을 당한 자연과학대학 황인환 학생회장은 학생회비에서 치료비를 지급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황라열 회장은 총학의 지원이 없는 자신들만의 활동 중 다친 것이고, 지원 기준 범위에의 해당 여부가 모호하다며 반대하였다. 수적인 우위에 있던 학생운동가 출신의 단대회장들은 치료비 지급을 가결하였고,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학내에 게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황라열 회장은 전대(제48대)의 학생회의 회계운영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였고, 이로 인하여 일부 단대회장들은 근거가 빈약한 폭로라고 맞서며 양 측은 또다른 갈등을 겪었다.

한총련 탈퇴 선언[]

단대회장들과의 극명한 충돌은 그의 한총련 탈퇴 공약 이행과정에서 나타났다. 2006년 5월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한총련에서 탈퇴 그리고 학생정치조직과 완전히 결별한다는 선언하였고, 이는 비롯한 언론들의 대대적인 관심을 끌었다. 각 방송국과 신문사들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 기사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였으며, 일부 보수 언론들은 황라열 회장을 1면과 사설 등에 실으며 학생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이라고 평가하였고, 일부 진보 언론들은 그의 한총련 탈퇴 선언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의 한총련 탈퇴 선언은 학생운동의 중대한 변화라는 주제로 9개의 주요 신문사 사설에 그의 이름이 장식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 동아일보 사설 “학생활동의 ‘새 시대’ 여는 서울대 總學”[2]
  • 문화일보 사설 “대학가의 脫한총련 도미노”[3]
  • 세계일보 사설 “용기있는 서울대의 한총련 결별”[4]
  • 조선일보 사설 “동료와 시대에 버림받은 한총련 ”[5]
  • 헤럴드경제 사설 “실사구시 추구의 총학생회장”[6]

그의 선언은 학내 학생운동가, 단대회장들과 일부 비운동권 학생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한총련 탈퇴 선언의 비판의 요점은 공약의 이행과정이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것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와 한총련과의 고리는 1998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서총련 불신임 결의 이후 사실상 끊어졌기 때문에 탈퇴 선언은 정치적인 선전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한총련 탈퇴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대표로 당선된 총학생회장이 가지는 공약의 책임성이 더욱 중요하며, 한총련과의 사실상 관계가 단절된 것과 공식적으로 탈퇴를 확인하는 것의 의미는 다르다고 지지를 보내며 서로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한편 당시 정운찬 총장은 “(서울대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가) 좋은 방향일지는 몰라도 대학생들이 너무 사회 의식이 없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평했다.[1]

탄핵 사태[]

허위 이력의 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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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입장을 밝히는 황라열 회장

2006년 5월말, 시사저널의 신호철 기자에 의하여 황라열 총학생회장이 선거운동 기간동안 밝혔던 이력 가운데 일부가 실제 사실과 다르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되었다.[2] 다른 언론에서도 황라열 회장의 이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학생들의 해명 촉구가 빗발쳤다. 이력 중 특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입학 후 자퇴'와 '한겨레21 수습기자' 경력이 크게 문제시되었다. 허위경력여부에 대한 논란이 계속 뜨겁게 일자, 고려대학교는 "당시 입학사정기록을 확인한 결과 황라열씨가 의예과 특차 및 정시전형에 지원했으나 모두 불합격하였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으며, 한겨레21 수습기자였다는 것도 허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3] 무에타이 프로 선수 경력이나 모 가수의 백댄서 경력도 신빙성이 입증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의 대표이사 경력과 관련하여 성인오락게임 바다이야기와 연루되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받기도 하였다. 2006년 6월 8일에는 학교 내 청문회가 열려 황라열 회장의 허위 이력을 추궁하였다. 청문회를 주최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력의 허위 기재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사퇴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황라열 총학생회장은 "허위이력 등 일부 잘못은 인정하지만 탄핵사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장하였다.

탄핵안 가결[]

황라열 회장이 사퇴를 고사하자, 세현 예산자치회 위원장이 그 직을 사퇴하면서, 황라열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학내에 붙였고 이는 탄핵의 불씨가 되었다. 예산자치회 위원장을 필두로 총학 게시판에는 140여명의 학우들의 사퇴 촉구 게시물이 올라왔고 2006년 6월 12일에는 학내에서 학생들의 서명을 받았다. 결국 황라열 회장과 갈등했던 단대회장들을 중심으로 한 41명의 전체학생회대표자회의 대의원이 서명한 탄핵안이 6월 12일에 발의되었고 당일 탄핵심판의 개의정족수인 대의원 재적 의원의 2/3이 성립되어 탄핵안에 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취재진을 파견하여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역사상 최초의 탄핵 사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발의된 탄핵안(전문 보기 법과대학 박종하 학생회장 작성)에 기재된 탄핵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1. 허위이력
2. 한총련 탈퇴 등의 비민주적 행위
3. 학우들의 단결 저해

본격적인 탄핵 논의 과정에서 대부분의 단대회장들과 대의원들은 탄핵 찬성발언을 하면서 민주주의과 단결의 회복의 차원에서 탄핵을 결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논의 도중 한 대의원이 탄핵은 대표자들끼리 결정하는 것보다는 전체 학생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총투표에 부칠 것을 제안하였으나 여름방학이 곧 다가온다는 이유로 총투표 제안은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 결국 논의는 종결되어 표결에 들어갔고 찬성 51명, 반대 3명, 기권 2명으로 탄핵안은 가결되었다. 황라열 회장은 탄핵의 결과를 담담히 수용하겠다고 밝힌 후 이내 그 자리를 떴다.

탄핵의 후폭풍[]

황라열 탄핵안이 가결되자 학내 여론은 탄핵안을 가결한 단대회장들과 대의원에 대한 성토로 들끓었다. 탄핵의 정당성과 절차상의 하자를 중심으로 문제제기가 되었다. 탄핵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보인 태도 역시 기존 정치권과 다를 바 없었다거나 여론수렴 과정이 미흡한 상태에서 성급하고 다분히 일방적으로 탄핵을 처리되었다는 언론의 평가도 있었다.[4]

당시 학내 사이트에서 올라온 문제제기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사퇴할만한 문제였지만, 극단적인 방법인 탄핵까지는 가는 것은 옳지 않다.
2. 탄핵안 발의부터 가결까지 몇 시간도 되지 않는 점, 학우들에 대한 의견수렴이 부족했던 점은 황라열 반대세력의 정치적 결정이었음을 보여준다.
3. 탄핵발의안에 허위이력은 맞지만, 비민주적 행위나 학우들의 단결 저해라는 사유는 운동권 세력들의 황라열 몰아내기의 명분에 불과하다.
4. 총투표 제안을 거부하는 등, 보다 민주적인 방안을 생각치 않은 대표자들만의 탄핵이었다.

이후 학생들이 내는 성토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 탄핵안을 작성한 박종하 법과대학 학생회장은 탄핵의 불가피성을 학생들에게 호소하면서도, 탄핵사유의 일부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학우들에 대한 의견수렴이 거의 없었음에 대하여 사과하였다. 탄핵에 찬성했던 몇몇 학우들도 허위이력을 제외한 탄핵 사유는 다소 주관적이었음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탄핵의 활시위를 맨처음 당겼던 예산자치회 위원장도 탄핵의 필요성을 재차 말하면서도 의견수렴 절차의 부족함을 일부 인정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과대학 학생회장과 대의원들은 탄핵과 관련한 문제제기에 침묵으로 일관하여 학우들을 실망시켰다. 한편 황라열 탄핵 절차가 정당하다는 견해도 학내 사이트에서 제기되었기에, 운동권과 반운동권으로 나뉘어 서로간의 극렬한 논쟁이 연일 벌어졌다.

탄핵 무효 문제와 송동길 직무대행의 사퇴[]

여름방학이 온 이후에도 탄핵 논쟁이 이어지는 와중,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칙상 황라열 탄핵의 효력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5]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칙 제3조 따르면,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회원은 재학 중인 자로 한다”. 제4조에서는 회원이 선거권·피선거권· 의사결정에 투표할 권리 등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일반 학생들의 경우 휴학을 하면 회원에 해당하지 않게 되어 선거권·피선거권·투표권을 가지지 못하는데, 학생대표자도 휴학 중이면 당연히 의결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회칙 해석상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부 단대회장들과 대의원들이 탄핵안 가결 시점에 휴학 중인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휴학 중이라 회칙상 의결권 없는 사람들이 탄핵안 발의와 가결에 참여하였고 이를 제외하면 발의/개의정족수에 미치지 못하므로 황라열 탄핵 가결에 효력상 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해석은 당시 토론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상당한 지지를 얻었으며 탄핵에 참여했던 일부 대의원도 이 해석에 동의했다. 결국, 총학생회의 총운영위원회는 격론 끝에 휴학생은 회원 자격이 없다는 해석에 동의하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휴학생 문제 등에 대하여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논의를 하기로 한 날, 개의정족수 부족으로 회의는 열리지 못하였다. 보건의료노조의 학내진입과정에서 집단폭행을 당한 송동길 총학생회장 직무대행 및 부회장은 회의가 열리기 전 회의가 무산되면 사퇴를 하겠다는 공언을 하였는데 회의가 무산되자, 기성사회와 학생사회에 환멸을 느낀다며 사퇴를 선언하였다. 송동길 대행의 사퇴 이후 단과대학교학생회장단 회의라는 새로운 체계가 출범하게 되었고, 대의원들의 묵인 속에 탄핵의 무효 논의는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탄핵 설문조사[]

서울대저널이 6월에 실시한 설문조사 [6]에 의하면 탄핵 이후에야 비로소 소식을 알았다는 학우가 62%였다. 탄핵 자체에 찬성한 학우는 약 42%, 반대는 25%의 견해를 보였다. 탄핵 절차상 의견수렴이 부족하였다는 답변이 75%였다. 그리고 대표자들의 결정으로 할 것이 아니라 총투표로 갔어야 한다는 의견이 54%였다.

탄핵에 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탄핵안 발의와 가결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최진혜 약과대학 학생회장은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다. 서울대 학생의 58.4%가 탄핵 자체는 정당하고 하였으나 69.2%는 ‘탄핵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답했다. 이 설문조사는 9월 26일(화)부터 서울대 학생 1077명을 대상으로 이틀 동안 강의실 및 본부 앞 잔디 등에서 설문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편, 설문조사 주체가 탄핵안 발의자인 최진혜 회장이었다는 점을 들어 중립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설문에 응답한 학생들은 ‘탄핵 사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58.4%에 해당하는 625명이 ‘탄핵이 될 만한 사유’라고 답했다. ‘탄핵이 될 만한 사유가 아니다’는 23.6%(252명), ‘잘 모르겠다’는 18.0%(193명)를 차지했다.

탄핵 절차 정당성에 관한 질문에는 58.5%(628명)가 ‘총투표 또는 총회를 거쳤어야 했다’고 응답했으며, ‘절차상 문제가 많으므로 무효다’라는 대답도 10.7%(115명)나 됐다.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은 20.2%(217명)였다.

또 학생들은 황라열씨 탄핵 이후 당시 부총학생회장 송동길씨(종교학과ㆍ99)가 총학생회장 직무를 대행한 것에 대해 42.2%(453명)가 ‘정당하다’고 답했다. ‘공동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어야 했다’는 31.0%(332명)였다.

설문조사를 주관한 최진혜 회장은 "(탄핵 절차에서) 일반 학생들의 의견 수렴 과정은 부족했다"고 밝혔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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