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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애덕(黃愛德, 1892년 4월 19일 ~ 1971년 8월 24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이름은 '에스터(Esther)'를 음차한 것이라 황애시덕(黃愛施德), 황에스터로도 불린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이다.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평양의 숭의여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1913년 비밀결사 송죽회를 구성해 운영했다.

도쿄에 유학 중 2·8 독립 선언에 참가했고, 3·1 운동 때는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했다. 3·1 운동 가담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뒤 대한민국애국부인회(회장 김마리아)에 참여했다가, 조직이 적발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김마리아, 박인덕 등과 함께 근화회를 조직해 활동했고, 귀국한 뒤로는 경성여자소비조합을 결성했다.

광복 후 동생 황신덕과 함께 독립촉성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여성단체총연맹의 회장을 맡는 등 우익 여성단체에서 활동했다 [1]. 제헌국회 총선에도 여성단체총연맹 소속으로 서울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3·1 여성동지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자료[]

주석[]

  1. 윤정란, 〈해방 후 국가건설과정에서 우익 진영 여성들의 의회진출운동〉, 《역사문화연구》 제24집 (2006.6.30) 211~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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